퇴근길 잡감

근황(17.07.16)

by 취생몽사

고 3의 방황은 내가 가르친 것이 아닐진대, 수요일 학원에 아이가 오지 않아 퍽 심란하였다. 그래, 미적분이 뭘 그리 중요하겠나. 내가 알기로 이 친구는 요즘 코딩이 관심이 많다. 물론 'Hello world!' 한 줄도 출력해내지 못할 것 같지만, "선생님! 코딩만 잘하면 돈 잘 벌 수 있다는데요?" 같은 질문에서 요즘 무얼 보고 듣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나는 비겁한 선생인지라, "xx야, 잘 들어. 우리나라에선 절대 엘론 머스크나 마크 주커버그는 안 나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오늘 출근해보니 그새 키가 더 컸나 싶은 이 친구가 멀쩡히 앉아 있었다. 탄젠트 함수 문제를 하나 풀어줬더니, "아 그냥 군대나 가고 싶어요." 한다. 나는 어제 퀴어퍼레이드에서 샀던 군번줄을 만지작거리다가, "야 군대에서도 탄젠트는 알아야 대포를 쏠 것 아냐!" 라고 대꾸해버렸다. 물론 나는 탄약관리병이었기에, 포탄은 많이 봤어도 대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다뤄본 적도 없다. 이것이 군필자가 미필자를 억압하는 방식인 것이다...라기 보다는 그냥 학원 선생들이 강의 도중 흔히 섞어 쓰는 개소리라고 해두자.

매번 이런 소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일하던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백남기 농민 이야기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중력에 대해 수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충 이런 글을 썼다.

"모든 물체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관성에 의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살수차의 물대포가 없었다면, 계속 살아가고 있었을 어떤 시민을 생각했다. 순간 관성을 잃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지구가 세차게 회전하고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갑자기 이 글이 떠올라 부끄러워졌고, 다시 이야기했다. "xx야, 구라야. 선생님 대포 몰라. 군대 좆같아. 가지마." 물론 당연히 이 친구는 별생각 없다. 키득거리다 다른 문제를 질문한다.

"방 안에서 방황해도 이미 삶의 방아쇠는 당겨졌어." 좋아하는 가사지만 방황 - 그래 봐야 담배 좀 피우고 공부 안 하고 뭐 그런 나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뿐이다 - 하는 아이들을 몇 년째 마주하다 보니, 삶의 방아쇠가 당겨졌기에 방황은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배움과 미적분은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법 거리가 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시민의식을 위해 필요한 것도, 어떤 것도 이 강의실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방황하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원장님, xx이가 더 많이 보고 듣게 해주시고, 더 많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세요. xx이가 아드님에게 틈만 나면 '인서울 하위권'을 이야기하는 원장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시다 원장님과 마주쳤다. 잠시 머뭇대는데, 원장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수학 쌤~ 죄송해요. xx이 수요일 수업 안 왔다면서요? 수업비는 그냥 넣어드릴게요." 물을 마저 마시고 7월 모의고사 이야기를 하다 강의실로 돌아왔다. 아아, 그래 나는 이번 주 수업으로 이센스 콘서트 티켓값을 벌었다. 더욱 열심히 가르치련다. 오늘 숙제는 자이스토리 58번까지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친구와 함께하는 수업은 이런 식으로 지탱되는 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