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사이다의 첫 방송을 지켜보며

오마이뉴스 기고(17.08.05)

by 취생몽사

"첫술에 배부르랴"

출연진은 물론 PD와 작가까지 모두 여성으로 이뤄진 프로그램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가 처음으로 방영된 후에,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진 많은 시청자가 떠올렸던 속담일 것 같다. 아직 시작 단계에 놓인 프로그램이 대개 그렇듯, <뜨거운 사이다>는 편집이나 구성에 있어 아직은 거칠고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띄었다. MC들의 진행은 흐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고, 패널들 간의 호흡 역시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느낀 아쉬움은 형식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 같다. 모호한 방향성은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패널들의 개성을 살리지 못한 채 이뤄지는 피상적인 논의 역시 아쉬움을 낳는다.

첫 방송에서는 여성 예능의 현실과 아이돌과 정치인 팬덤의 비교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해당 논의들은 무난하게 진행되었지만 각 패널의 특색은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다. 그나마 첫 주제는 일종의 사이다를 선사하는 것에 부분적으로 성공한 듯하다. 깊이있는 대담은 아니었으나, 여섯 패널이 각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주제는 두 가지 영역의 비교라는 제한상 좀처럼 깊이 있는 내용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점은 여전했으며, 패널들의 개성 역시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썰전>은 그 패널의 수가 적어 논의에 있어 충분한 발언 시간이 보장되고, <알쓸신잡> 역시 각자의 전문분야만을 이야기하기에 나름의 전개가 이뤄진다. <뜨거운 사이다>가 실질적인 안정화를 가져가기 위해선 출연진의 호흡을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주제 선정에 있어서도 제작진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뜨거운 사이다>가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프로그램 속 코너 '문제적 인물'이었다. 첫 방송의 게스트로 나온 것은 사진작가 로타(rotta)였다. 그는 문제적 인물이라는 수사에는 적절한 인물인지 모르겠으나,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선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게스트였다. 이날 대부분의 시간은 로타가 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여성의 특정한 성적 취향을 개인의 영역이라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인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그나마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이영진 모델의 지적은 날카로웠으나 게스트로 불러 마이크까지 쥐어준 로타를 앞에 두고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는 힘들었으며, 이여영 대표의 발언은 편집이 많이 된 탓인지 단정적인 발언 몇 개로는 사이다라기보다는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문제적 인물' 코너를 통해 온라인에서 벌어졌던 논쟁적 이슈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스크린으로 옮겨오게 된다면, 결국 여섯 패널보다 문제적 인물만이 인상에 남는 방송이 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라면 제작진은 소설가 김훈을 게스트로 모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짐작하건대 로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사코 "잘 모른다"고 답변하는 모습을 방송에 내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십과 논란만 남은 방송은 청량감을 상실하고 만다. 차라리 페미니즘, 소수자 인권 등 진보적인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던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섭외하여 방송을 진행하는 편이 훨씬 기획 의도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물론 <뜨거운 사이다>는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부분보다도 방송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예능이다. 남성이 주를 이루는 예능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여성이 중심에 서는 여성으로만 꾸려진 예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홍일점'이니 '꽃 병풍'이니 하는 등의 한국 예능에서 여성 패널을 소비하는 저열한 방식을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선언과 같은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방송계 내부 여성에 대한 인식이 상승했다는 지표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선언을 확장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는 것 역시 필요하다.

<뜨거운 사이다>는 이름부터 기존의 상식을 뒤엎고 있다. 사이다의 청량감을 보장하는 탄산의 경우 온도가 높아질수록 사이다에 녹아있지 못한 채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며, 이 경우 뜨거운 사이다는 그저 뜨거운 설탕물에 불과하다. 프로그램에 주어진 과제는 여태껏 시도되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 방향성을 찾기도 난망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사회 전반적으로 여전한 여성에 대한 저열한 인식은 프로그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불러오기도 할 것이다.

프로그램에 애정을 담아 지켜보려 하는 한 명의 시청자로서 여전히 그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있다. 동시에 이 피로감이 더 반복되지 않고 청량감을 선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더욱 많은 관심과 치열한 피드백이 프로그램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뜨거운 사이다>가 방송계 성 평등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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