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17.07.23)
발제문의 첫 문단을 완성했을 때 맨 처음 떠오른 단어는 '오징어덮밥'이었다. 반성폭력 세미나에서 '집밥 백선생의 허구'를 지적할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이지 또렷하고 강렬한 욕망이었다. 나는 영화 '클로저' 의 주드 로라도 된 것 같았다. 불현듯 오징어덮밥이 내게 "Hello, stranger?" 하고 속삭임에,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비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고대 앞 사거리에서 청량리로 향하는 그 길가에는 괜찮은 식당이 여럿 있다. 불향 배어있는 오징어 덮밥을 내는 거북이 기사식당이 있다. 아직 한 번도 가본적 없으나, 승준이 형의 말에 따르면 돼지불백이 맛있다는 고대 기사식당도 있다. 정문 근처에도 식당들이 있다. 설마 이 꾀죄죄한 동네는 늦은 밤엔 장사를 하지 않아도 아침엔 오징어덮밥을 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적으며 생각해보건대, 일요일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가게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골목을 지나 정문 근처의 가게들로 향했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Closed', 그 매몰찬 단어에 나는 좌절했고 오징어덮밥은 커녕 아예 열려있는 가게가 없다는 사실에 구슬퍼졌다. 멸치국수 집은 어데로 갔는가. 뒤포리와 멸치를 반반 쓴다던 그 집 말이다. 아이고 억울해라.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오기가 생겨 이공계 캠퍼스로 향했다. 옷은 젖을 대로 젖었다. 그러나 이공 냉면이니 친구네니 이모네니 하는 그 많은 식당들도 전부 문을 닫았다.
결국 유일한 선택지였던 김밥천국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기자기한 식당에 앉아 돌솥오삼비빔밥을 하나 시켜 먹었다. 몇가지 불만이 혀끝을 스친다. 그러나 이 더운 날에 휴일에도 불앞을 지켜내야 하는 분들이 있는데, 6500원을 냈다는 것이 아침 식사를 평가할 근거는 아니라고 믿고 있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전부 먹었다. 가게를 나서니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있다. 조만간 오징어를 볶아 막걸리 한 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