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의 당사자성’
새벽 우연히 마주한 글에 '담배의 당사자성'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담배에 인격이 부여된 것이 아닐진대, 그 물성을 다루는 담배회사의 보고서가 아니라면 '담배의 당사자성'이란 구절이 성립할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글쓴이와 일면식이 전부인 내가 그 의미를 감히 찾아보건대, 아마도 그는 담배에 놓인 타인과 자신의 서사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와의 일면식을 돌이켜 보았고, 흐르고 넘치던 말들 속에 담배에 대한 것은 없었구나 싶어 이러고 앉아 또 문장을 늘어놓는다. 누군가가 일상을 매듭짓는 순간에, 정말 소중한 한 둘이 아니고서야 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괜히 딴전을 피우는 것 아니겠는가.
한 개비 담배가 가져다주는 3분 30초의 위안(그것은 부유한 이에게도 가난한 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몇 안 되는 것 하나이지만, 그 헛헛한 감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써보도록 하자.)이 그것을 둘러싼 온갖 백해무익함을 떨쳐내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상식이라고 하여 흡연자들이 담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나는 담배를 거의 다 끊었다."고 중얼거리다가, 폐가 기능을 정지한 후에서야 앞선 문장에서 '거의'라는 부사를 떼어버린다. 물론 그 순간이 오면 인간에게 끊어지는 것은 담배 뿐은 아니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아 물론, 내일이면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공부해야 하는 공학도가 보건 정책에 관한 글을 쓸 이유는 없다. 건강이나 세금 이야기는 나만의 서사에 포함시키지 말자고 다짐한다.
담배를 처음 물었던 순간이라던가, 담배가 가져올 내 미래의 모습 같은 것에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학생회를 시작하고 하루에 한 갑을 바라보고 있는 흡연량이다.
"아무 때나 앉아 담배 한대 펴
몸에 해로워 나도 알지 물론
중독인데 아닌 척 사실은 그냥 멍 때릴
시간 좀 버는거지 조용한 5분을 줘"
그저 이센스 말마따나 시간을 조금 버는 것이다. 아무래도 요즘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당위로 현실을 두들겨보거나, 현실을 당위로 조각해보거나 하고 있다. 둘 다 하지 않을 때라면 조금 위험한데, 강렬한 감정에 빠져 문장을 잃어버렸거나, 감정을 담아내기 위한 강렬한 문장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재미겠지만 담배에 녹여내는 감정은 종종 "후우, 너네는 이런 것 피지 마라."로 수렴하기에, 나의 허세에 관한 빈곤한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오늘은 당위와 현실에 대해 적어두려 한다.
당위란 당연히, 마땅히, 자연히 그리 해야 하는,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굳이 당위라는 단어를 꺼내 들게 된 것은, 인간사 어느 것 하나 자연히 그리되는 법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세월호, 백남기, 탄핵당한 대통령과 사드에 얽힌 사람들을 생각하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당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당위가 아직 당위가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세월호, 백남기, 탄핵당한 대통령과 사드에 얽힌 사람들을 생각하라. 당위는 여전히 당위가 되지 못했다. 적고 나니 뭐라도 한 것 같지만, 역사적 흐름 앞에 내가 무엇무엇을 했노라 손꼽아가며 그것을 운동이라 부르는 것은 내게 익숙지 않다. 그런 것 잘 하는 친구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수많은 의제와 각각의 당위가 내 멱살을 잡았다고 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나저나 일을 시작하고, 당위란 말의 생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까지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현실이라는 낡고 강력한 핑계가 싹트기까지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당위와 현실은 일종의 동지적 관계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 중 하나를 잃어버리는 날엔 나머지 한쪽도 자연히 고사한다. 그래서 나는 당위로 현실을 두드려보고, 현실을 당위로 조각하여 사소함을 찾으려 했다. 게으르고 모자란 사람인지라, 그것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담배를 태우러 학생회관 2층으로 향해야 했던 일이다. 담배를 들이마시며 나는 내재한 당위에 서사를 붙이고, 다시 한번 감정을 머금는다. 무채색 문장에 색을 입히며, 잊지 않으려 분투하는 무엇이 된다. 하지만 담배는 결코 영영 머무르지 않는다. 결국, 코로 입으로, 숨결에 섞여 흘러나간다. 나는 그 일말의 동력이 아쉬워 눈앞에 촛불이라도 있는 양 힘껏 숨을 내뱉어 댄다. 그래야 우주의 일상 속으로 흩어졌을 미약한 몸짓은 나의 의지를 담아 나아간다. 비록 한 뼘이나 될까 싶은 거리가 담배 연기의 한계일지어나, 나는 그 꼴이 흐뭇하다며 연신 담배를 태운다. 내게 담배란 한 개비에 5분씩 시간 좀 버는 일이다.
이건 그럴듯하게 적힌 담배에 대한 나의 서사, ver 2017이다. 하지만 요즘 글이 대부분 그렇듯이, 수많은 눈빛과 감정은 가라앉은 채로 마음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랑 한 번 언급하지 않은 담배에 대한 글이 무슨 소용이고, 허세 한 번 부리지 않은 담배에 대한 글이 대관절 무슨 소용인가 싶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수업을 가기 전에 시간 좀 벌어야 하겠다. 미끄러지듯 장난스럽게 적어낸 글도 일면식의 누군가에겐 나름대로 가닿기를 바라는 것이 괜한 기대인가 생각해 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