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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17.02.09)

february sick

february sick


그니까 이게 모두 다 축구팀 같은 것이라서, 최고 중의 최고들과 함께하고 있는 최고의 팀을 구성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선수층이 너무 얇단 말입니다. 얇아도 너무 얇아서 몇 명 빼버리면 아예 팀이 돌아가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과, 이 글을 읽고 계실 당신들과 함께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아무런 전술도 없이 매번 당신들에 의지해서 한 경기 한 경기 간신히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선수 몇 명이 팀을 떠났고, 저는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경기장에 들어서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날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군요. 매일매일이 졸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저는 상황이 매우 나아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 스쿼드에 대한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같습니다. 저는 최근 많은 시간동안 최고의 팀 덕에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자꾸 제 그릇의 크기를 확인하고, 감정이 삐걱거려서 왠지 모르게 더욱 당신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인연의 그물 안에서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은 제겐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 시간들도 전혀 걱정하지 않아요. 많은 관계들이 제겐 나름의 교훈이 되었고, 그것들은 당신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다만, 저는 언제나 아무런 전술도 없이 그저 "당신이 좋습니다."라는 말 밖에 반복할 수 없다는 것, 그게 부담일까 걱정입니다.


영원을 믿지 않지만, 요즘 가끔 이 시절이 반복되기를, 그래서 우리가 항상 이렇게 마주보고 있기를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시절 속에서 느려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것은 아주 다양한 것들이겠죠. 박근혜씨의 탄핵이 인용되길 바란다거나, 모든 소수자들이 더 이상 차별 받지 않는다거나, 원전이 더 이상 가동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들이요. 네 허세입니다. 그래도 우린 거대한 것들에 끊임없이 분노하고 대안을 상상할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 4부 리그의 팀에게도 1부 리그의 우승컵을 상상할 자유는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조금 더 사소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에게 읽어주었던 글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구요. 당신이 들려주었던 음악보다 더 좋은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겠죠. 함께 했던 영화보다 더 좋은 영화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어른의 문법이라는 것이 우리를 옥죄어 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면 저 구석에 숨어서 키득대는 녀석의 뾰족한 뿔과 날쎄게 움직이는 꼬리를 본 것도 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 녀석에게 “적어도 오늘은 아냐.” 하고 중얼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낡은 인형처럼 아무도 없는 새벽 텅 빈 일기장엔 괜시리 미안함’만 남았습니다. 조금 후면 다시 또 해가 뜹니다. 이 어둑새벽에 다시 한 번, 적어도 오늘은 아니라고 다짐합니다.


8393번째 경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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