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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17.02.21)

‘남쪽으로 튀어’

‘남쪽으로 튀어’


제가 이 책을 읽어보라 권유 받은 것은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학원 강사였던 당신께서 우리에게 이 책을 처음 권했고, 당신을 따라 읽었던 제 친구 하나가 이 책을 또 권했습니다. 그렇게 당시 숫자에만 관심있던 중학생 명석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9년이 지나서 이제는 알바를 할 적에만 숫자를 들여다보는 대학생 명석이가 생일 선물로 받은 두 권의 책을 읽으며,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도 봤습니다. 조금 모자란 감이 있긴 합니다. 김윤석은 좋은 배우이지만, 우에하라 이치로는 훌륭한 배우보다도 찾기 힘든 훌륭한 농민이자 어민이지 않습니까.


돌이켜 보면 재밌는 것은 당신은 대안학교를 위해, 또 당신을 따라 읽었던 제 친구는 단지 수원이 싫다는 이유로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전 아직도 그 학원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계속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신은 좋은 스승이었으니까요. 당신과 제가 항상 술을 마실 때면 나누는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한 인연이기도 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세상 모든 성공의 전부라 가르치는 학원의 원장 밑에서, 저와 제 친구들은 당신에게 라면을 끓이는 법부터 백석의 시에 이르기까지 배웠습니다. 그것들은 여러 의미에서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살아남았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당신에게 시를 배우던 친구들 몇몇은 영영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전 아직도 그 이들을 생각하면 조금 가슴이 아픕니다. 비록 멀쩡히 누구보다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을 친구들이지만, 분명 그 북수동 어딘가에 흩어진 그들의 영혼의 조각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관 속에 들어가기 전에 영혼의 죽음을 맛보곤 하지 않습니까. 사실 고백하자면, 제가 전역 후에 보냈던 시간들이 그랬습니다. 계절이 3번 정도 돌고 나서야 저는 이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렇다고 확신이나 긍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요즘 제가 그래도 이렇게 지내는 것은 회의와 불안이라 할 지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저에게 세번째로 권한 친구는 정말 훌륭한 친구입니다. 사실 제가 가진 몇 안되는 재주들에 한해서도 이 친구가 훨씬 뛰어나고, 그가 지닌 다른 재주들은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저를 거두어 준 탓인지 지금은 제 가장 친한 친구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끊임없이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어제도 레이첼 맥아담스 나온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극 중 의사였던 그의 배역을 간호사라고 말했다가 호되게 혼났습니다. 저는 매우 당황했고, 부끄러웠습니다만 지금은 다행이고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책 이야기를 좀 해야겠지요. 아아,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아마 제가 이 책을 선물로 받은 까닭은 부쩍 풀이 죽어 우울해 하던 제 모습을 제 친구가 간파한 탓이겠지요. 이치로가 말하듯, 혼자가 되는 것은 좌절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순간 계급적 시점을 잃게 됩니다. 10년쯤 지나게 된다면 저는 뭘 하고 있을까요? 진보정당들의 무능함을 탓하며, 그렇다고 한국에는 리버럴 정당도 없다면서 팔짱끼고 앉아 사회 언저리에서 침이나 뱉고 있지 않을까요? 당신과 제 친구 모두 저를 호되게 야단칠 것입니다. 그것은 기쁜 상상이 아니긴 합니다.


제가 멈춰섰던 두번째 문장은 인간과 전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는 이치로가 지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인간이란 모두 전설을 원하지. 그런 전설을 믿으며 꿈을 꿔보는 거야.” 영웅은 사람들을 대신해 제물로 바쳐져 죽음을 맞고 사람들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갑니다. 전 언제나 그게 불만이긴 했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비극이라면, 그 영웅들 개개인의 실존은 어디에 있어야 하냐는 것 말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저는 그 사실이 가끔은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 영웅이란 제물로 바쳐지는 것뿐 아니라, 밭에 꿈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기도 할 테니까요. 이제 그 곁에서 한 삽 거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가 마지막으로 멈춰섰던 문장 역시 이치로의 것이었습니다. “추구하지 않는 놈에게는 어떤 말도 소용없지.” 제가 감히 아직 뭘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나름의 방향성은 정해진 것 같습니다. 삶의 변주라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제게 있어 익숙한 멜로디는 오직 하나니까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좆같으면 좆같다.” 이 두 문장으로 요약되던 제 멜로디는 최근에 두 문장을 더 집어넣어 완성되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사랑하자. 좆같으면 좆같다, 태워버리자.” 정도쯤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뭘 해보겠다고 나서게 될 것을 입시학원에 다니던 중학생에게서 간파하셨습니까? 곧 뵈러 갑니다. 좋은 술자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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