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빨계떡이 고든 램지의 자취 라면보다 나은 이유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가 가진 언어의 힘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믿게 하는 것’에서 나온다. 배운 사람들에 의해 그것은 ‘사회적 구성물’ 혹은 ‘가상의 실재’라고 불린다. 사피엔스는 지난 세월 복잡한 이야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그 속에서 이 ‘가상의 실재’들은 존재할 뿐 아니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삼성’이라는 개념이 실존한다고 믿는다. ‘이건희’가 의식이 없고, ‘이재용’이 감옥에 갔다고 해도, ‘삼성’이라는 기업이 명시된 법률 문서를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것으로 ‘삼성’은 실재할뿐더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내가 수업시간 집중 못 하고 딴 생각하는 고등학생마냥 굴기 시작한 것은 그 대목이다. ‘사랑’이란 개념은 어떠한가. 그것은 특정한 호르몬의 분출, 뇌파의 변화 등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랑’의 신화가 설명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랑’이란 낱말이 펼쳐지는 현실 속 양태는 수많은 관계를 포함하며, 그 각각의 ‘사랑’ 역시도 제각기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랑’은 수많은 사피엔스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제법 유사한 맥락으로 펼쳐진다. 그것은 관용적으로 국경이나 인종, 계급 등의 개념을 초월한다고 이야기될 지경이다. 물론 사피엔스 일반을 사유하는 것은 내게 버거운 일이나, 지난 경험에 비춰 나란 사피엔스에게 작용하는 ‘사랑’을 설명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정한 개인 A와 B가 만나 함께하는 연애 속 서로를 향해 남기는 ‘사랑’이란 단어는 대부분의 경우 그 둘의 사랑이다. (모르긴 몰라도, 폴리아모리의 경우라 해서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A는 B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믿게 하며, B는 A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믿게 한다. 고작 두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믿는 것만으로, 두 사람은 일상에 생기는 균열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그 균열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찌 되었든 ‘사랑’이란 고작 두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믿는다는 전제 아래 발생하는 힘일 뿐이다. 사실 나는 그 힘을 제법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사랑’의 신화를 발명한 것 역시 사피엔스의 위대하고 위험한 업적 하나 아니겠는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덤블도어가 이야기하듯, 그렇다면 ‘사랑’은 가장 강력한 마법과도 같다. 이를테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칙에 따라, 최소 3500명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찬성투표로 꾸려지는 제50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나의 일상에 미미한 영향력밖에 행사할 수 없지만, 고작 이 정도의 영향력 역시 더 많은 사람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투표한 3500명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그 근거가 되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칙과 그것이 규정하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및 그 선거시행세칙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두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사랑’이 가진 힘은 실로 강력하지 않은가. 덤블도어가 옳았다. 유 노 낫띵, 볼드모트!
(술자리를 시작함) 그러나 내게 ‘사랑’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동시에, ‘사랑’은 타인의 삶에게 지배를 받는다. 그렇다면 연애가 끝나고 ‘사랑’의 신화를 해체할 적에, 그것도 일방적으로 ‘사랑’의 신화가 해체될 적에,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가. 지금도 옆 테이블에선 전 여자친구가 밤 11시에 이태원에 갔다며 방에서 소주를 세 병 깠노라하는 사내 녀석의 이야기가 들린다. 강력한 힘으로 충만한 일상에서 던져진 개인은 무력하고, 질척거리고, 찌질대기 마련이다. 다만 경험이 그를 그러한 이탈에 적응하게 할 뿐이다. “우! 우리가 서로의 첫 만남이 아닌 건 오히려 날 기쁘게 해! Cuz my past relationships give me the lessons, and you’ve been through the same things.”
‘사랑’이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가상적 실재’에 대한 내 잡생각은 모두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내가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나의 애인에게만 유효한 무엇이다. 다만,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란 ‘가상적 실재’에 반응하는 내 모습이다. 길지 않은, 그래서 어디에 내놓기 뭐한 사유를 굳이 A4 한 장으로 끌어낸 것은 그런 이유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