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26
얼마 전 스윙스는 세번째 업그레이드라 불리는 더 지루한 버전의 앨범을 냈다. 나는 갸우뚱했다. 업그레이드는 대체 뭔 놈의 업그레이드인가.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던데, 무슨 업그레이드 씩이나 기대하겠나.
물론 사람 고쳐 쓰지 않는다는 말은,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말이다. 게다가 이는 타인을 지칭하고 있다만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법이기에, 비난 닮은 핑계라고 해도 좋다. 흔한 경우는 아니겠다만, 인간은 변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을 송두리째 업데이트시키는 사건들에는 신화, 기적, 운명 등의 수사가 붙는다. 앞서 열거한 수사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라면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 신화나 기적, 운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쯤에서 잠깐. 작년과 올해의 나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라 한다면, 믿음의 유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 믿음이 사라져가는 과정은 거대한 비관이 신화를 교살하는 형태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과정은 조금 긍정적인 부분마저 있다. 노을 좋은 날에 성북천을 걸어 집에 돌아와 저녁 찬거리를 고민하는 모습은 제법 흐뭇하기도 하다. 일상이 꽉 짜여져 더 이상 극적인 변화를 상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성북천을 걷는 등 뒤로 길게 내려앉은 그림자에 체념이니 자조니 하는 것들도 따라붙겠지만, 아무렴 어때.
한편으론 퀴퀴한 삶의 내음도 있다. 대부분의 공대생이 그러하듯, 과제가 매주 두개, 퀴즈도 대충 두개, 보고서도 2~3개씩 주어진다. 이 역시 믿음을 소거하는 과정이다. 푸리에 변환과 다이오드의 동작, 전송선의 반사계수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더 이상 다른 주제들에 머리를 쓸 여유가 없어진다. 머리에 여유가 생기지 않으면 가슴에서도 밀려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는 인간이 미약한 지성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공대생이 취직 잘 된다는 말에서, 공대생이 몸 담게 될 일자리에 대한 생각을 하고 만다. 사축이라는 웃지 못할 말이 뜻하는 삶의 무기력한 관성은, 직업소개소로 변화한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들의 리스트 맨 꼭대기에 놓여있다. 공대의 커리큘럼은 그 관성을 내용이 아닌 형식 속에서 담아낸다. 다들 알다시피, 정작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내용이 아닌 형식에 침전되는 법이다.
다시 스윙스로 돌아가서, 그의 업그레이드는 알을 깨고 나오는 아브락사스의 그것이 아니다. 상승작용은 그의 망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껍질을 한 꺼풀 벗기면 밑천이 드러나는 인간들의 그것이다. 하지만 변화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변화에 대한 믿음의 여부로 끝을 맺는다. 그렇기에 나는, 스윙스가 그의 음악적 성취가 답보 혹은 퇴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향한 의지를 담아 앨범을 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의지 자체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요즘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산다.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생각 거의 안해. 생각이 필요하면 글이라도 쓰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