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16)
특정한 사실관계에 대한 기억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기록하고 되새기며 우리는 기억의 수명을 조금씩 연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나 가장 어려운 것은 사건을 둘러싼 감정을 기억하는 일인지 모른다. 전민희의 소설, 룬의 아이들 '윈터러'에는 천년 간 살아온 에피비오노라는 천재마법사가 나온다. 그의 이름인 에피비오노는 '살아남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덕에 그는 왕국의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아 왕국의 폐허를 떠돌고 있다. 천년을 살아온 그는 우리에게 기억과 감정에 대한 한 가지 단초를 제공해준다.
에피비오노는 왕국의 왕녀 에브제니스의 소꿉친구이자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모종의 이유로 방랑을 떠나게 되자, 그 역시 혼자 고향에서 실력을 감춘 채 은둔하며 지내기 시작한다. 에피비오노는 왕국의 최후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7년 만에 에브제니스와 재회하지만, 말다툼만 한 채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를 끝내버렸다. 에피비오노는 사랑했던 왕녀 에브제니스와의 마지막 대화를 사소한 싸움으로 끝내버린 걸 여전히 후회하고 있으며, 천년의 세월이 지나며 기억은 그대로인 데 비해 기억 속의 감정들이 옅어지는 것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에브제니스의 아름다운 얼굴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으나, 황홀과 정열을 되새기지는 못한다. 그는 에브제니스와 나누었던 마지막 말다툼의 모든 순간과 문장을 기억하고 있으나, 당시의 원망과 섭섭함마저 되새기지는 못한다. 그는 에브제니스를 잊어가는 중이다.
모든 비극이 가지는 공통적인 비극성이라면, 결국 이 비극 또한 언젠가는 잊혀진다는 것이다. 비극을 생생히 담아낸 영상이 있다고 한들, 비극과 마주한 개인들의 감정마저 담아낼 수는 없다. 무려 1000년의 기억을 지닌 에피비오노가 그렇듯이 말이다. 특히 요즘은 더욱 그렇다. 개인이 감정을 온전히 간직하기에도 어려운 시대에, 공동체가 마주했던 비극이라고 해서 감정이 쉽사리 다음 세대로 전승되지는 않는다. 울먹거림이 향할 곳은 어디인가. 대통령이 직접 제주의 4월과 광주의 5월을 언급한다고 한들, 감정은 전승되지 않는 법이기에 저 밑바닥에서 냉소와 혐오를 억제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정치적 반대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당사자가 아닌 인간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손아귀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그 날의 감정을 잃어버린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이제는 세월호를 이야기함에 있어, 손목의 노란 팔찌를 한참 동안 바라보아야 간신히 문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망각이 더욱 얄궂다 말하는 것은 흩어진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에는 진한 피로감이 남기 때문이다. 누군가 14년의 4월에 대해 피로감을 느껴본 적 있냐고 묻는다면, 망설이긴 하겠지만 솔직한 답변은 "그렇다."이다.
14년의 4월엔 이등병 생활관의 텔레비전으로 마주했다. 15년의 4월엔 일부러 휴가를 나와 놓고도 멍청하게 조치원 분향소 앞에서 망설였다. 16년의 4월엔 뒤척거리다 새벽에 광화문 분향소로 뛰어나갔고, 17년의 4월엔 이런저런 추모 사업을 기획했다. 어느새 피로감은 부쩍 자라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어제는 광화문에 다녀오는 것으로 18년의 4월을 보냈다. 조금 밝아진 광장의 분위기, 절박함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 짓고 있는 결연함,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울분이 엿보였다. 조용히 시를 읽는 사람들, 저마다 가슴엔 노란 리본을. 리본은 광장의 사람들을 기억과 행동이라는 두 단어에 강렬하게 묶어 놓았다. 그리고 순간 잊었던 감정의 잔향이 맹렬히 쿵쾅거렸다. 그 날이 가져온 깊고 수척한 단절이 사방을 가로질렀다. 나는 언젠가 또다시 짙은 피로감에 빠져들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세월호 1000일 집회에 손난로로 눈물을 훔치던 덩치만 커다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부쩍 잊고 살던 스스로의 모습.
에피비오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에피비오노가 진정 잊어가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스스로의 황홀과 정열, 원망과 섭섭함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에피비오노를 탓할 것은 못 된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망각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뻔뻔한 작자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추억이랍시고 탈색된 감정의 기억을 미화하며, 스스로도 기억 못 하는 자신의 모습을 쥐고 트로피인 양 흔들어댄다. 나 역시 그들처럼 될까 두렵다. 감정은 하나도 간직하지 못한 채로 어렴풋한 자의식이 나를 대변하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이 글은 사실관계가 아닌, 오롯이 나를 담아내기 위해 쓰였다. 공학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의 출력값을 기억해 미래의 시스템에 영향을 주기 위한 기억소자로 작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잊어갈지언정, 꾸며낸 자기 자신을 쥐고 거드름피우지 말아야 한다. 언제고 이 글이 나의 지침이 될지어다. 오늘은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배가 가라앉은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모두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