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해설가와 리포터, 그리고...

설명하는 자와 질문하는 자, 그리고...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해설과 캐스터는 남성이고, 인터뷰는 여성이 진행하는 것이 나는 기이하게 여겨졌어. 이를테면, 오늘도 롤 중계를 보다가 외국에서 진행하는 대회임에도 여전한 역할 분담을 보고 있거든. 이는 설명하는 자와 질문하는 자의 권력관계로 이야기할 수 있고, 그 배경에 젠더를 위치할 수도 있지. 어라, 이런 전개. 사실 이런 생각의 진행을 굉장히 오랜만에 하고 있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다. 이게 어려운 내용이라서가 아니라, 내겐 자꾸 지긋지긋한 어떤 문장들의 되풀이였기 때문이야.


아마 이제 나는 페미니즘 지식인(하는 짓은 셀럽이나 다름없다만)들을 향한 환멸조차 거둬들이는 중이다. 이를테면, 나도 수많은 사람들처럼 정 선생님 책으로 페미니즘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떤 문장들은 너무 좋아하지만, 그 분의 세태에 대한 무관심이나 몰이해에는 넌더리가 났거든. 이제는 그런 감각조차 없어. 관심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어제 애인과 나의 트리거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사실 요즘은 버튼이 잘 눌리질 않아. 방아쇠에 기름칠하지 않은 시간이 제법 되거든.


삶에서 한 발짝 떨어진 사유는 이리도 편안하다. 죄책감을 동반하는 편안함. 하지만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냐는 자조감 또한 동반하는 편안함. 이쯤에서 충고와 위로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전부 이해하고 고맙게 생각한다만, 나는 솔직히 너무 많이 지쳤어. 누구는 날더러 흑화할까 두렵다고 하던데, 흑화는 무슨. 그러지 않더라도 이 세계에서 적당한 정치적 올바름과 살아가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제대로 된 싸움은 할 용기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편을 나눠 오늘도 내일도 허공에다 총질하며 계속 싸워대겠지. 좁은 판일수록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도 많더라구. 그게 먹힌다는 걸 아는 거지.


누가 누구를 씹고, 누군 누구보다 잘났고, 심지어 어느 누군 누군가를 깠다고? 중학교 쉬는 시간에나 나올법한 무용담이 난무하는 판에 나의 영혼이 담긴 노랫말들을 선보이고 평가받은들 뭐하겠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뇌였지, 놉놉 이건 아니라고 봐. 남보다 큰 의미를 이 안에서 찾고파.


여전히 페미니즘에 감사해, 내게 더 큰 세상을 열어준 것도 같아. 다만 그 속에서도 삶을 질투하는 모든 것들과 싸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 일상속에서 2년 전의 나였다면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처럼 사유했구나 싶어 스스로의 변화에 조금 놀랐을만한 순간에, 2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아무래도 이제 주체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버렸어. 그건 조금 괴상한 일이지, 그런데 또 영 말이 안되는 일은 아니야.

작가의 이전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