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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쉬옴 뉘노리 가탄 생.


점주님의 말을 나는 믿었지. “아마 명석씨가 붙으실 것 같아요.” 사교육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할 수 있는 알바가 편의점이나 피시방 정도더라. 그 중에서 야간수당, 주휴수당 챙겨준다는 곳이 있어서 알바를 지원한거야. 언제나 설레발은 필패였을까. 불합격 통보 받고 다시 과외 알바로 돌아왔네. 서울에 사는 고3학생이야. 그러고 보니 따끈따끈한 원칙(사교육을 하지 않는다.)은 물론이고, 조금 처박아두었던 원칙(고3은 맡지 않는다.)를 동시에 어기게 되었어. 그래도 뭐 어쩌겠나, 내 코가 석자인 걸.


서울 사는 아이들 정말 신기하더라. 별의 별 스펙이 고3한테 다 있어. 나도 고등학교 때 이것저것 학교 도움받긴 했는데, 심화 수업 수준이 아예 다르더라고. 강남 8학군 그런 말이 왜 생기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 이 친구들과 수원 친구들 사이의 거리가 비록 이것뿐만은 아니겠지. 온갖 문화자본을 비롯해, 시민의식이나 세상물정에 이르기까지. 3루까진 아니어도, 2루 베이스 정도는 밟고 있더라고. 안타 한 방이면 득점도 가능해 보여.  

아마 그런 차이가 또 대학에서 있겠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입장 정하기 힘들었는데, 솔직히 이젠 그런 말 하기가 뭐하네. 적어도 이공계는 먼저 회사 간 선배들에게 취업 정보 받는 건 하나하나 따지기가 귀찮을 정도잖아. 나도 합리화를 해야 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이게 합리화씩이나 필요한 것인지, 뭐 그런식으로 뒷걸음질치고 있어.


아무튼 김준엽 총장 이야기를 들으며 고대를 희망한다는 이 고3 학생은 유전자 공학을 꿈꾸고 있는데, 나도 한때는 뇌공학에 관심이 많았거든. 실제로 우리 과 대학원엔 뇌공학과가 있긴 해. 그 랩실 선배들은 무조건 서울대나 카이스트 가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전기기사 자격증 준비하려는, 그래서 58년 개띠들 빠진 자리가 얼마나 될까 궁금한 94년 개띠야.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주변사람들은 마치 내가 자조라도 하는 것처럼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더라. 그런데 난 이게 정말 자조가 아냐. 인류의 미래나 풍요에 이바지하지 못할 거라면 적당히 실무자가 되는 편이 낫다고 믿는 거거든. 송유근을 바라보며 일말의 서글픔을 느꼈던 것이 나뿐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 모딘 길에 뻐러디여 곳잎은 우니나, 바라믄 롱호미라 엇디호리오.


유전자 치료를 꿈꾸는 아이에게, 바람의 속도를 네가 앞설 수 있겠냐고. 아서라고. 그렇게 말하긴 좀 그래서 열심히 과외할 거야. 그 돈으로 집에 형광등을 달았어. 자취방 밝은 게 얼마나 좋은지. 에어컨도 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쉬옴 뉘노리 가탄 생, 오늘은 이렇게 흘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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