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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 장염 맨

흔히 금강불괴라 하는 무인의 신체 능력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터다. 도검불침이라 하면 칼날이 피부를 뚫지 못함을 의미하고, 수화불침이라 하면 냉기과 열기를 견뎌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꼽아보자면 만독불침이라 하여, 독기가 몸에 침입하지 못하는 경지가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살아온 나는, 크게 아픈 일 하나 없이 ‘이 정도면 내가 만독불침의 경지 아닌가 껄껄’하며 오만방자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삶 24년 하고도 5개월째 되던 날, 처음으로 지옥 문앞에 몸을 뉘이게 되었다. 그를 추억하며 몇 자 적는다.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고 나면, 어딘가 속이 불편해지는 것은 내 오랜 증상 하나다. 저녁 6시가 다 되어 라면과 햇반을 사와 통화를 하던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향했고, 왠지 모르게 묽은 것을 배출하는 대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허허 이 놈이 왜 이런담?’ 내게 중학교 2학년 과학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대장은 소화에서 별로 하는 일이 없다. 기껏해야 수분을 흡수하는 일인데,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설사를 하게 된다. 나는 설사의 설이 눈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설하다라는 뜻일까를 고민하며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통증은 계속 되었다. 장기가 쿡쿡 찌르다 못해 스스로 똬리를 트는 것마냥 뱃속에 매듭이 생기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새벽에 술을 먹다 하루 종일 고생한 적이 있었고, 익숙한 불청객과 씨름하며 복통과 편두통은 내 오랜 벗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배가 아플 때는 잠을 청하는 것이 최고라 여긴 나는 고통에 지쳐 잠에 들었다. 낡은 자취방엔 미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냉장고만이 웅웅거리고 있었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후의 평화였다. 잠시 후 잠에서 깬 나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화장실에 달려가 뱃속의 매듭을 어루만졌다. 내게 매듭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적의 노래 ‘매듭’과 ‘고르디아스의 매듭’이었다. 물론 그 순간 차분한 발라드 노래를 흥얼거릴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알렉산더의 마음으로 뱃속의 매듭을 단칼에 내리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온 몸에선 땀이 비오듯 흘렀고, 마침내 구토를 동반하는 토사곽란에 이르게 되자 나는 그제서야 내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병원도 가본 놈이 가는 법이다. 응급실은 커녕 내과도 잘 가지 않던 나는 그 때까지도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설사와 구토를 동반하는 이 증세는 내게 모멸감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위로 아래로 액체를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온 몸에선 땀을 흘리고 있으니, 이렇게 불결한 질병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통은 마음을 유약하게 만들었고 연락을 받은 애인님이 부랴부랴 약과 물을 사오시게 되었다. 플라시보 효과였는지 잠시 평온을 찾은 나는 다시 기절하듯 매트릭스에 몸을 뉘였다. “아마도 식중독일 테야.” 인터넷으로 석가모니의 사인이 식중독이라는 것까지 찾아본 나는 그 와중에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는 척 자가진단 결과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런 나를 벌하기라도 하듯 복통이 다시 시작되었고, 결국 애인님은 내 손을 붙잡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은 신기한 곳이다. 신음하는 사람들이 낑낑대고 있는데, 유난히 차분한 의료진은 내 혈압을 쟀다. 배가 아프다는데 왜 혈압을 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마셨던 물마저 토해내고 나서 심전도 검사, 혈액 검사, CT 촬영까지 받았다. 의료진은 절대 금식 팻말을 들고와 내게 수액과 진정제를 맞혀 주었다. 나와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이 제법 많았는데 대부분이 5~60대 분들이었고, 나는 ‘젊은 놈이 저리 허약해서야’ 혀를 차시는 다른 환자들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잠시 뒤 위대한 현대의학은 석가모니가 별 거냐며, 내게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힘이 생긴 나는 애인에게 “어렸을 적부터 병약한 미소년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하고 농을 쳤으나, 정확함을 중시하는 애인은 미소년을 소년으로 정정하며 농을 묵살했다. 난 법조인이 싫다. 16만원이라는 병원비에 식겁했으나, 평화는 언제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금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 길로 토마토주스를 사마시다가 다시 병원에 갈 뻔한 소소한 해프닝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삶이란 게 좀 지겹긴해도 좋은 건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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