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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We shall overcome someday.

영화 <박치기!>(2004)를 몇 장면으로 정의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노래 '임진강'의 멜로디만큼은 분명하게 흥얼거릴 수 있을 터지만, "<박치기!>는 어떠어떠한 영화이다."라고 이야기하기엔 긴 망설임이 따를 것이다. 영화의 전개는 괴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과잉의 연속이다. 거친 전개와 불친절한 장면 구성은 영화보다는 만화적 표현에 더 가깝고, 인물들의 감정 역시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대사가 주는 쾌감 또한 찾기 어렵다. 젠더적으로 바라볼 적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6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도 남성들의 여성관은 충분히 많은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선사할 것이며, 남성 호모 소셜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탓에 폭력성도 다분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치기!>는 수작이다. 과잉 속에서 주제를 잃지 않으며, 만화적 표현 속에서도 영화의 미학을 뽐내고, 부족한 감정 처리와 대사 속에서도 분명한 메세지를 전한다. 영화 <박치기!>는 이 모든 황당한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때는 1968년, 교토의 히가시고등학교 학생들과 조선고등학교 학생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한다. '기무치'와 '쪽바리'로 상징되는 두 집단간의 악감정은 마주칠 적마다 피를 부른다. 그 선봉에는 공화국으로 돌아가 월드컵에 나가겠다는 꿈을 가진 안성이 있다. 악감정을 친선 축구 시합으로 승화시켜보자는 히가시고등학교 선생님의 복안에 따라, 주인공 코우스케는 조선고등학교에 시합을 신청하러 간다. 코우스케는 무섭게만 느껴지는 조선인들 속에서 플룻으로 '임진강'을 연주하는 안성의 동생 경자를 마주하게 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영화는 계속해 대립과 긴장을 굴려나간다. <박치기!>의 주요 서사는 이들의 대립과 갈등, 화해와 사랑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영화는 더 많은 인물과 관계를 담고 있다. 안성의 아이를 임신한 모모코와 그녀를 돌보는 간호사이자 안성의 친구 강자, 모택동에 빠져있는 히가시고등학교 선생님이나 그의 애인 나타샤, 훗날 전공투에 뛰어드는 코우스케의 친구, 스웨덴에 다녀온 뒤로 장발에 콧수염까지 기르고 나타난 사카자키 어느 인물 하나 언급하지 않기에는 조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심지어 제목 <박치기!>는 주인공 안성의 주무기이기도 하지만, 박치기에서 프로레슬러 김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부산에서 건너왔다는 긴타로라고 불리는 조선인을 보며 미소지을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잉된 인물 설정이 주인공들의 갈등과 사랑 속에서 엮이는 광경은 황당함을 넘어, 미묘한 쾌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코우스케가, 아니 일종의 창씨개명을 통해 이젠 조선인들에게 강개라 불리는 소년은 경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언어와 음악으로 사투를 벌인다. 한편, 안성과 방호, 재덕 등의 친구들은 근처 일본 고등학생들과 계속해 전쟁을 이어나간다. 이 두 집단은 똑같이 야만적이며, 폭력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박치기!>가 지닌 묘한 매력이 등장한다. 결코 그 두 집단을 동일선에서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 말이다. 싸움이 계속되던 어느 날, 일본 고등학생들로부터 집단 린치를 받고 쫓기던 재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고, 장례식에 간 코우스케는 조선인 어른들로부터 냉대를 받으며 그들에게 어떤 피맺힌 역사가 있었는지를 듣게 된다. 경자를 향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조선인들에게 어디까지나 '쪽바리'일 수밖에 없어 코우스케는 좌절하여 아끼던 통기타를 내동댕이친다. 



한국 영화가 조선족 등의 정치적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은 여전히 <범죄도시>나 <황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에 반해, <박치기!>는 재일 조선인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하면서도 아주 세련된 방식을 택한다. <박치기!>는 정치적 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무작정 소수자를 선한 인물로 그리는 것을 넘어 맥락과 구조를 짚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 어른들의 한을 마주한 코우스케가 비로소 갈등을 체화하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임진강'을 불렀듯이, <박치기!>는 재일 조선인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의식을 한껏 끌어올리려 하는 것이다. 이는 젠더 혐오 등 다양한 혐오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된 2018년 대한민국에도 유의미한 접근법이다.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안성과 방호 등이 일본 고등학생들과 펼치는 강가의 결전과 동시에 코우스케가 라디오 방송국에 출연하여 '임진강'을 조선인들의 심정으로 울먹이며 부르는 클라이맥스 부분일 것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도 <박치기!>의 과잉은 어김없이 발휘된다. 특히 방송국 PD가 일갈하는 표현의 자유는 그 뛰어난 연기 덕에 상당한 감동을 선사하며, 중도 채용이나 낙하산 인사 같은 블랙코미디적 요소도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본인이 가야할 길을 잊지 않는다. '임진강'을 일본어와 조선어로 부르는 코우스케의 목소리는 경자의 라디오를 통해, 조선인 어른들에게까지 고루 닿는다. 그렇게 코우스케가 경자를 보며 죽은 재덕에게 배운 어설픈 한국어로 "둘이서 함께 하고 싶습니다."를 더듬더듬 말할 적에, 우리는 두 사람에게서 화해와 치유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영화의 부제를 다시 읽는다. 


"Break through!, We Shall Overcome Someday."



임진강 -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


イムジン河 水清く とうとうと流る

임진강 물은 푸르고 도도히 흐르고

水鳥 自由に むらがり 飛び交うよ

물새들은 자유로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네

我が祖国 南の地 想いははるか

나의 조국 남쪽 땅 추억은 저멀리

イムジン河 水清く とうとうと流る

임진강 물은 푸르고 도도히 흐르네


北の大地から 南の空へ

북쪽의 대지에서 남쪽의 하늘로

飛び行く鳥よ 自由の使者よ

날아가는 새들이여 자유의 사자여

誰が祖国を 二つに分けてしまったの

누가 조국을 두개로 나누어 놓았던가

誰が祖国を 分けてしまったの

누가 조국을 나누어 놓았던가


イムジン河 空遠く 虹よかかっておくれ

임진강 하늘 저멀리 무지개여 이어주세요

河よ 想いを伝えておくれ

강이여 추억을 전해주세요

ふるさとを いつまでも忘れはしない

고향은 언제라도 잊을 수 없어

イムジン河 水清く とうとうと流る

임진강 물은 푸르고 도도히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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