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2017)

by 취생몽사

소공녀라 하면 흔히 프랜시스 버넷의 삼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자, 소녀소설의 효시라는 미국 소설을 떠올리기 쉽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세라 크루라는 소녀가 비록 어려운 환경에 놓이지만 스스로가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 끝에 다시 행복을 찾게 된다는 권선징악적인 이야기이다. 이러한 서사 자체는 사실 신데렐라 판타지라 불리는 한국 드라마에서도 접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던 여성이 재벌집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행복하게 산다는 식의 서사 말이다. 이런 서사는 소공녀 이야기에서 권선징악에 방점을 찍어 만든 이야기이다. 이 과정 속에서 여성은 종종 무력하거나 수동적으로 묘사되기 마련이며, 행복한 결말을 위해 판타지적 요소만을 강화한다. Little Princess는 영영 그렇게 소비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 조금 다른 소공녀 이야기가 있다. 남자친구와 담배, 위스키면 충분하다는 미소는 서울에 살고 있는 3년차 가사도우미이다. 등록금이 비싸 대학은 중퇴했고, 할 줄 아는 일은 가사 노동이 전부였기에 미소는 하루 45000원의 돈을 모아 월세를 내고 머리를 검게 유지시켜주는 한약을 먹으며 산다. 때는 2015년, 월세가 5만원 오르고 담뱃값은 2000원 올랐다. 위스키 값도 덩달아 오르자 미소는 결심을 한다. 그녀는 집을 나왔다.


집을 나선 그녀는 대학 시절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미소의 눈과 입을 빌려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변한 것 없는 미소와 달리, 미소의 친구들은 저마다 때가 묻었다. 더 이상 낭만을 찾지 않는 사회인이 되었고, 더 이상 꿈을 찾지 않는 주부가 되었다. 누군가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정상성에 매몰되거나 충실히 복무하는 것에 여념이 없고, 누군가는 이혼과 빚에 허덕인다. 미소는 그들에게 대꾸한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영화는 그렇게 천천히 끝을 향해 미끄러져 간다. 미소의 주변 사람들은 미소를 냉대하거나,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하나뿐인 남자친구는 자신의 꿈이었던 웹툰 작가를 포기하고, 미소를 남겨둔 채로 2년간 사우디 아라비아로 파견을 떠난다. 그 와중에 미소는 일자리마저 잃게 되고 자포자기한 끝에 복권을 산다. 그리고 70억에 당첨되었으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권선징악의 판타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모서리까지 스며들지는 못했다. 가난은 결코 극적인 서사나 판타지를 제공하지 않았고, 미소는 백발이 성성한 채로 여전히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한강 둔치에 텐트를 펼쳤다. 미소는 그렇게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편을 선택했다.


이 웃픈 소동극을 이끌어가는 힘은 미소다. 그녀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글렌피딕과 에세가 아니다. 담배와 위스키는 그녀 삶의 품위를 나타내는 일종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그녀의 품위와 그것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세상은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그녀는 비현실성 그 자체가 되어, 현실의 얄궂은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비춰낸다. 그녀에게 굴절된 밴드원들의 모습은 미소보다도 힘겨워 보일 정도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이끌어 낸다. 매끄럽지 않은 영화이기에, 사람마다 인상적인 장면이야 다르겠으나 우리는 결국 미소의 하루살이에 시선이 닿게 된다. 우리는 과연, 미소의 친구들처럼 미소를 대할 수 있을까. 도시의 가난이 기괴한 표정으로 펼치는 이 코미디에서 마냥 웃기에는 분명 어딘가 찝찝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품위란 무엇일까. 우리네 도시에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사실 그 전에 우리는 타인의 품위를 존중할 수 있기는 한가. 이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품위를 강요하는가.


우리는 이 영화가 영어 제목으로 Little Princess를 취하지 않고 Microhabitat를 가져다 쓴 이유를 그제야 깨닫게 된다. 소공녀(Microhabitat)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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