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 '100분 토론'을 보면서

문제해결에 있어 분석과 진단이 중요한 이유

by 최진호

잠자리에 들기 전 인터넷을 본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한 동호회 게시판에서 지난 2월 12일에 100분 토론이 정말 재미있었다는 게시물과 이에 동조하는 수 많은 댓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해당 프로그램의 “다시 보기”를 누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저의 경우에는 유쾌함이나 즐거움, 흥미와 관심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은 오롯이 ‘씁쓸함’뿐이었습니다. 토론이 격해지면서 일부 패널들 사이에서는 ‘혐오’, ‘비열’과 같은 거친 말들이 오고 갔고, 상대의 의견에 비웃음과 조롱을 던지는 것은 다반사 이더군요. 패널의 토론 태도와 언행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때로는 격한 토론을 통해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제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바로 토론 주제입니다.


토론 주제는 대기업 임원 같은 고위직에 대해서 적정 수준 여성의 인력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성할당제’였습니다. 근본적인 이슈가 아닌 지엽적이고 편협한 주제인거죠.


똑 같은 토론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제로 뭐가 있을까요? ‘여자도 군대에 가야한다’ ‘초중고 교육과정에 페미니즘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공무원 채용에 있어, 군복무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 ‘여대를 폐지하던지, 남자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뭐 이런 것들이 있겠네요. 이런 주제는 한결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만 조장하기 마련입니다.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볼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질을 흐려 놓고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만 깊게 하죠.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정치인이겠죠. 말도 안되는 정치적 논리와 부조리도 이런 갈등 속에 녹여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답 없는 정치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조직과 개인의 삶 속에서
지엽적이고 편협한 주제에 매달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뭐가 있을까요? (1) 사장님께서 저 성과자를 서둘러 해고하라고 하셨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2) 상대평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D등급을 주어야 하는데 대상자를 설득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요. 어떡하죠? (3) 특정 직군의 경우에는 초과 근로가 필수적입니다. 그렇다고 상시인력을 늘리기에는 근무량이 일률적이지도 않고 고정비용을 부담할 형편이 아닙니다. 어떻게 52시간 근로시간 제도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4) 요즘 W세대는 도대체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면 자율권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자율권을 주지 않으면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미쳐 버리겠습니다 (5) 후배한테 술 한잔 따르라고 했다고 성희롱으로 고발당했어요. 저는 여자 후배라고 술 따르라고 한 게 아니에요. 남자 후배에게도 말합니다 (6) 우리 팀장님은 성과보다는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만 편애하고 더 높은 평가를 줍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런 주제가 단편적인 과제라는 것에 결코 동의하실 수 없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모두 단편적인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 단편적인 문제에만 집착하면 운이 좋지 않는 한 결코 바람직한 결과나 문제해결은 얻으실 수 없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진짜 문제들에서 파생된 일부분이거나 특정한 환경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마땅한 답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풍선 누르기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튀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앞선 문제 모두 다 그렇습니다. (1) 법을 위반하면 대가가 따르죠. (2) D등급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 C, B, A가 줄줄이 기다릴 겁니다. (3) 탄력근로제나 야근근무요건 강화는 ‘눈 가리고 아웅’식입니다. (4) 정말 세대이해 교육으로 세대간 갈등이 해결되리라 생각하세요? (5) 해당 성희롱 문제에 대한 어떤 방식의 조치도 조직 분위기를 망가트리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6) 평가권한에 대한 관여는 때로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펴봐야 할지 모릅니다. (1) 사장님이 해고를 요구한 건 저 성과자가 아무런 제지없이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다른 직원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일 겁니다. (2) 세상의 어떤 제도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는 없습니다. 특히 평가제도는요. 우리는 우리의 조직문화, 비즈니스 환경, 업종, 직무 등을 감안할 때 가장 적합한 제도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합니다. (3) 법을 피해 나갈 방법을 찾지 말고 이번 기회에 근무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과 이를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4) 이거야 말로 조직이나 리더십 전체를 뒤집어 봐야 합니다. ‘W세대는 이렇다’라고 하는 것만큼 본질을 왜곡하는 말은 없죠. (5)과 (6)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개인에 대한 문제 역시 일반화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며, 각각의 제도가 목표하는 바를 효과적, 효율적으로 이루어 내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인색합니다.


목적을 세울 때도, 계획을 세울 때도, 제도를 만들 때도, 육성과 교육을 할 때도 “우리는 무엇을 전달할까? 경영진과 직원들이 좋아할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왜 이런 것들을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런 방식이 익숙하기도 하고 더 쉽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에게 보고하기도 편하고, 일하기도 편하며, 주의와 관심을 끌기에도 편하고, 내 편을 만들기도 편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가볍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장도 문제해결도 얻어내긴 어렵죠.




오늘도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참~ 조직 안 변한다”


하지만 그건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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