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2019)' 본 후
오늘 우연히 미국 연방대법원 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를 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지금의 저는 그다지 현재의 여성인권운동이나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편이 아닙니다.
안티 여성인권운동가도 아닙니다만 점점 그런 운동에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불편한 감정이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감정적인 이유로 다가올 땐 저 역시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오늘 대표적인 여성인권가를 다룬 영화로 가슴 떨리고 깊은 감동을 받은 건 왜일까요?
그 이유는 저에겐 영화 주인공이 여성운동가가 아닌 세상의 차별과 불의에 분노하고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인간이자 무엇보다 차별과 불합리를 스스로의 지식과 논리의 힘으로 깨 부셔냈던 영웅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은 뼛속까지 남성우월자인 제가 차마 부인할 수 없는 위대한 ‘여성 인권 승리자’를 보자 그의 타이틀에서 슬며시 ‘여성’이란 단어를 빼앗는 치졸한 모습을 보인 건 아닐까요?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세상이 상당히 여성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직장 내 유리천정이 분명 존재하며, 기득권의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하고 여성들에게 의도적으로 기득권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또 그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종종 여성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비정상적인 모습은 개선되거나 파괴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자기모순에 빠진 건가요? 아닙니다.
그런 제가 최근의 여성인권운동이나 페미니즘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일부 여성인권운동가와 일부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차별의 문제를 남녀의 대결 구도로 바꿔 갈등을 양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일부 형편없는 남자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선동이 무서운 건 저처럼 최소한 중립적인 사람마저 감정에 휘둘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정치적 선동(프로파간다)처럼 말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죠. 주인공 ‘긴즈버그’는 오로지 차별에만 집중합니다. 그는 실제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죠.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건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 달라는 것뿐입니다” 아마도 제가 불편함을 느끼는 일부 여성운동가들도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인공 긴즈버그는 ‘차별’을 없애 달라고 했지만, 일부 문제의 여성운동가들은 ‘차이’를 없애 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은 차별이지만 여성성 자체를 표현하는 것을 차별이나 범죄화 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제는 여성과 남성의 아름다움과 근력의 차이를 함부로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곤 합니다만 모든 차이가 척결의 대상은 아니지 않을까요? 세상의 많은 차이와 다름이 조화와 시너지를 만들어 내며, 세상을 좀 더 살만 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차이로 인한 차별과 또 차별 그 자체일 뿐입니다.
맞습니다. 애초에 남녀 차별이 있었고 그 차별로 인해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만들어졌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여성은 일방적으로 차별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또 세상을 바꾸기엔 기득권을 가진 자와의 거리가 너무 벌어졌습니다. 때문에 이 같은 차이를 여성 가산점이나, 군 복무 가산점의 폐지나 여성 채용 쿼터제나 여성 임원 쿼터제 등으로 강제로 조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습니다만 결코 합리적이지는 않습니다. 첫째 차이의 강제적 조정은 또 다른 차별을 낳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차별은 놀랍게도 기득권자가 아닌 미래의 피해자를 향한 차별일 뿐입니다. 둘째 강제적 조정과 같은 비논리적 방식은 언제나 대결구도와 갈등구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논리가 없으니 설득이 되지 않고 설득이 되지 않으니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마련이죠.
저는 이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을 보면서 주인공 긴즈버그 외에 또 하나의 승리자를 보았습니다.
그건 논리와 합리입니다. 긴즈버그에게 첫 승리를 안겨준 법정에는 또렷이 이런 글귀가 새겨 있었습니다.
“Reason is the soul of all law(이성은 모든 법의 영혼이다)”
그녀가 삐뚤어진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논리와 합리’였습니다. 구제불능인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올바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에 분노합니다. 성폭행범에게 터무니없는 형량을 내린 판결을 보며 누구나 화를 냅니다. 임원이 아니라 부서장만 해도 여성은 별로 없는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논리와 합리로 부조리와 불합리를 깨 부셔야 합니다. 충분한 능력과 성과를 발휘했는데도 응당한 대가를 얻지 못하거나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만들고 해결해야 합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이나 남녀 대결구도식의 주장은 설사 시작이 선하고 그 결과가 바람직하다 생각해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만족할 만큼 빠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 여전히 믿습니다.
긴즈버그 대법관 역시 영화 속에서 이런 말을 했죠. 이 재판으로 시작해서 178개의 성별에 의한 차별법을 차례차례 부셔 나갈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보다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여전히 합리와 논리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마지막으로 긴즈버그 대법관의 명언 중 하나를 같이 공유해 보려 합니다. 누군가 긴즈버그 판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 연방대법관의 수는 몇 명입니까?”
긴즈버그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9명 전부요”
사람들은 모두 놀랐죠.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연방대법관 전원이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잖아요”
참고로 린즈버그는 1993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96대 3의 찬성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