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닌 장애를 갖고 산다는 것
친구의 결혼식에 내려가던 중, 나는 8시 기차를 예매했다. 가는데 20~30분, 준비하는데 20~30분이면 충분할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역시나 시간은 틀렸고 나는 8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결국 서울역에서 나는 급히 어플리케이션을 켜 기차표를 취소하고 5000원에 가까운 수수료를 물었다.
adhd 환자인 내가 시간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습해야 익힐 수 있다. 남들은 그게 무슨 adhd때문이냐며 웃는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adhd들의 삶이다. 보조도구들을 통한 습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일반인인 당신은 캐리어를 챙기고 밖을 나선다. 그리고 곧장 서울역으로 간다. ADHD인 나는 일어나 수 없는 생각들과 싸운다. 냉장고 속 닭가슴살을 출출할 테니 챙길까?, 그러고 보니 저거 냉동인데 냉장고에 있어도 되는건가, 아.. 냉동고가 있는 냉장고를 사야 해. 매번 까먹는 군. 다이어리를 꺼내서 메모를 할까?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세수를 하고 나가야겠다. 어? 손목시계를 어디에 두었더라. 그리고 그것을 한참 찾는다. 집안은 엉망. 물론 나는 당당하다 쓰레기더미가 아니다. 깨끗한 물건들의 더미다. 그런데 그것에 또 압도당한다. 나는 왜 이렇게 지저분한가. 이건 무슨 이유 때문인가. 역시 내가 그렇지. 나는 쓸모가 없다. 어느덧 시간은 10분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는 순간....
세상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존재한다. 현대인들은 하루에 수천 수만의 정보들을 머릿속에 주입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모른다. 그것은 그저 한낱 지나가는 광고인지도, 다신 만나지 않을 사람이 입은 옷 브랜드 인지도. 그러나 adhd환자는 다르다. 모든 정보가 동일한 가치로 다가온다. 또는 그닥 필요없는 정보들이 압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adhd의 삶은 그러하다. 압도적인 정보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장애이다.
adhd에 대한 낙관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그것은 병이 아니라 성향이다라던가 그것은 그래도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이 질환이 얼마나 일상을 파괴하는 장애인지.
예컨대 당신 앞에 여기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그는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와 온전히 인지하고 교감할 수 없다. 단순히 공부할 때의 집중이 되고 되지 않고 등의 주의력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adhd로 산다는 것은 인지의 장애를 겪고 있는 것과 같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일종의 불투명한 필터가 머릿속에 존재한다. 당신은 세상을 온전히 보고 있지 않은가? 온전히 많은 이들이 보는대로, 존재하는대로 본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다. 이들이 adhd환자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10여 분의 웹서핑과 20여 분의 카카오톡을 하며 기차 창문 옆 의미 없는 검은 터널 속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한 남성의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그의 인생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지금 나의 심정이 여러분에게 잘 전달되었을지 의문이다. 사실 표현한 것 보다 ad의 삶은 더 복잡하다.
이것은 장애이다. 일본에서는 발달장애처럼 장애인으로서 사회적 보장을 받기도 한다. ADHD에 대해 때로는 웃어도 좋다. 재미있는 병이긴 하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장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