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마케터의 일기록
잠재력을 찾는 여정의 시작
이 기획을 디벨롭하면서 '스피크이지바'의 우연한 대비를 접목시키고 싶었다. 예상되는 지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졌을 때 경험이 각인되고 몰입감이 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온라인에서 아래와 같은 시나리오로 구현했다.
보통의 날과 다름없이 과외를 하러 설탭 앱을 접속한 학생들은 "어느 날 과외 앱에서 이 세계로 통하는 쪽지가 도착했다"는 팝업 문구를 보게되는 것으로 온라인 팝업 경험이 시작된다. 팝업을 클릭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웹페이지로 연결되고 페이지 너머에서 '지금 혼자 있냐'고 묻는다.
어딘가 수상하고 약간의 공포감을 불러오는 물음에 '응'이라고 답하면 아서 C.클라크의 명언 페이지로 이어진다. 아서 C.클라크를 세계관 설정에 있어 주요한 핵심 캐릭터로 삼은건 아서 C.클라크가 지금이야 SF 소설계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또한 시작은 미약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탈출이 핵심 컨셉이라 그 문법을 동일하게 가져와 일종의 숨겨진 메시지인 '이스터에그'를 웹페이지 곳곳에 숨겨두었다. 이 이스터에그들은 아서 C.클라크가 각본가로 참여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의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경험이 '방탈출'을 은유하는 고양이 게임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각 페이지에서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핵심 경험 페이지인 '멀티버스'페이지에 도달하고, 9개의 방에서 다양한 테마의 경험을 한 뒤 방탈출을 위한 힌트를 얻어 10번째 방에 일치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탈출하는 시나리오이다.
각 방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지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등의 행위를 유도했다. 거기에 더해 설탭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어떤 유대를 더할 수 있는 장치로 '선생님에게 비밀번호를 얻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설정해 두었다. 원활한 경험을 위해 선생님들께는 미리 학생이 수업 전/후로 이 캠페인에 대해 언급한다면 특정한 답을 알려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학생이 과외 수업이 기다려졌으면 좋겠다'라고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실제로 운영팀에서 '이 힌트를 얻는 과정을 통해 학생과 더욱 친해지는 계기를 얻어서 좋았다, 이런 캠페인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라는 설탭 선생님의 칭찬 VOC가 접수되기도 했다.
9개의 방 중 특히나 고심해서 기획한 방 소개
1. 나의 비밀 일기
스캔된 일기장의 일부를 보고 학생이 일기를 쓴 학생의 선생님이 되어 코멘트를 적도록 유도하는 방이다. 스캔된 일기장은 남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실제 일기의 일부로, 시댁에서 남편의 어릴 적 일기를 살펴보던 중 남편의 일기에 달린 선생님의 코멘트를 가만히 읽어보다 그 선생님께서는 ‘글씨를 잘 써야지, 글의 주제가 없다’는 등 지적만 할 뿐 어린 아이였던 남편의 꿈이나 남편의 잠재력을 살펴봐주는 코멘트는 써주지 않으신 게 많이 아쉬웠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라는 생각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야, 아이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가이드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지속하다 문득 이 일기장이 떠올랐다. 일기장의 코멘트를 '나라면 어떻게 써줄까'하는 고민했던 경험을 통해 결국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곧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경험한 이 감각이 학생들도 곧 그렇게 경험할 것이라는 확신과 설득력을 만들어줬다.
학생들이 스스로 깨달으려면,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학생들에게 네가 선생님이라면 이 일기장을 쓴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후기에서 '이 학생한테는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응원하는데 왜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못하는 걸까'하는 코멘트를 보면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이 방을 기획하고 설계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래는 이 방탈출까지 완료한 학생들에게 요청한 후기 설문의 결과. 이 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써준 학생들이 많았다.
2. 나의 업적 알아보기
‘업적’이라는 단어에서 작아지는 스스로를 알아차렸다가, 우리가 말하는 업적이란 대단한 성취가 아닌 학생들의 존재 그 자체가 업적이다라는 메시지를 깨닫고 반전을 경험할 수 있는 방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룬 업적에 대해 체크를 유도하며 체크리스트들은 ‘태어남’, ‘옹알이를 함’ 등 누구나 겪어왔을 당연한 것들에 주목하게 하는 질문들로 구성했다.
3. 요즘 무슨 고민 있어?
학생들이 고민을 써서 보내면, 설탭 브랜딩팀이 직접 손 편지로 답장을 보내주는 방. 온라인에서 경험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심이 전달되려면 현실에서 물성이 있는 물건으로 보이고 만져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3주에 걸쳐 참여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손 편지를 썼다.
답장을 쓰기 위해 고민을 살펴보다 보면 학생들의 고민이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험에 대한 초조함, 성적에 대한 압박감, 진로 설정에 있어서의 불안함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니다’라는 답변처럼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서 와닿지 않는 공허한 조언보다는 고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여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학생들의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캠페인 도중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위에서 말한 고민방에 이름을 ‘윤서’라고 밝힌 어떤 학생이 자포자기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이 실제이든 아니든 우리는 이 윤서라는 학생에게 답장을 보내고 싶었으나, 답장을 받을 주소조차 적지 않아 답장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고민 끝에 이 웹페이지 내 답장을 써놓고 우리의 채널을 이용하여 윤서에게 닿으려 노력해 보자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멀티버스 페이지에 ‘윤서에게’라는 방을 만들고 ‘이름을 ‘윤서’라고 남긴 너에게’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담아 답장을 썼다.
이후 SNS 등에도 주변에 윤서라는 이름의 학생을 알면 우리의 답장이 닿게 도와달라는 포스팅도 했는데, 부디 윤서 학생에게 우리의 진심이 가닿았길 바란다. 윤서가 답장을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윤서'들이 이미 그 자체로 반짝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속했다.
이후 윤서에게 방에는 학생 개인의 고민에 대한 우리의 답장을 아카이브 해나갔다. 학생들의 불안함과 초조함, 막막함을 잘 알기에, 우리의 답장을 보고 누군가 생각의 전환을 통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위대한 영웅도 시작은 미약했다.
최종 방까지 ‘탈출’하게 되면 아서 C. 클라크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아서 C.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어느 날 갑자기 짜잔! 하고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단편 <파수꾼>에서 발전된 이야기이다. 이 파수꾼이라는 단편은 BBC의 스폰서십을 받기 위해 쓴 단편이었는데 스폰서십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3년이 지나도록 출판 제의조차 받지 못한 미약한 시작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이렇게 열심히 학생들의 잠재력을 탐구하고 있어’를 외치는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 학생들과 진심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브랜드 메시지를 보다 임팩트 있게 전달하고 학생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유추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과 공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위대한 영웅도 시작은 미약했다. 아직은 미약해 보이지만 스스로 잠재력을 탐구하는 시도를 섣불리 포기하지 말라는 우리의 응원이 전달되었길.
그리고 캠페인 결과
설탭이 '학생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어필하는 교육 브랜드인데 비해 학생들의 자발적인 브랜드 언급도는 거의 전무할 정도로 낮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브랜드가 학생들에게 대화를 건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캠페인은 브랜드가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첫 시도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첫 오픈 당일 '설탭에서 이상한 이벤트를 한다'는 설탭 유저가 모여있는 오픈카톡방의 학생들 반응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해당 캠페인이 앱 내 인트로 배너를 통해서만 학생들에게 노출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 기준 전환율은 50%를 달성하였고, 일 평균 방문자 2,000여명, 누적 방문자 수는 약 43,000명으로 기록되었다.
브랜딩 캠페인을 하며 늘 어려운 건 역시 결과 측정이다. 몇 명이 이 캠페인을 인지하였고 경험하였는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메시지를 잘 이해했는가?도 못지 않게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험 후기 설문을 설계하였고 그들이 남긴 텍스트의 워딩이 우리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얼만큼 일치하는지, 또 감명받았다면 상대적으로 긴 코멘트를 남길 것이라 가설을 세우고 메시지 일치와 텍스트 수의 두 가지 기준으로 '몰입'을 간접적으로 평가하였다. 보수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였음에도 5점 만점에 평균 3.02점을 기록했다. 특정 불성실한 후기 작성 건을 제외하곤 잠재력이라는 단어나 도전 등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느정도는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럼 이 캠페인은 성공적이었을까?
역시 비교 지표가 없기에 비교도 어려웠지만, 이 캠페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설탭의 캠페인 경험에 대해 언급하는 게시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설탭이 학생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였다고 생각한다.
PS. 진심은 역시 아날로그 방식이 가장 생생하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