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소 Aug 20. 2024

나는 나의 번아웃을 좋아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번아웃 디깅하기

나의 번아웃을 좋아하기로 했다. 밑미 리추얼 ‘하루 하나 좋아하는 것 디깅하기’에서 이번엔 3주 동안 나의 번아웃을 디깅했다. 좋아하는 것이 번아웃이라니, 연결이 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어쩐지 이번에 내가 번아웃이 왔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함으로써 나에게 온 번아웃을 좋아하고 싶어졌다.


나는 나의 번아웃을 좋아하기로 결심했다.


내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건 아주 사소한 일에서였다.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오다가 중간에 누군가 타느라 멈추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경험, 회사 일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고 출근길은 세상이 끝날 것 같이 우울했으며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막막함과 숨 막힘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 가족은 내가 유일한 봉급생활자이자 경제적 가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에 더욱 큰 책임감이 느껴졌다. 딱히 어떤 게 싫어서라기보단 회사에서 숨 쉬는 것을 포함해 그 모든 게 힘들었다.  나 스스로만 좀먹는 일이라면 버티려고 했으나 나 스스로를 좀먹는다는 건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나의 세계가 무너진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했다. 이직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겐 정말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일주일 넘게 미열이 지속된다거나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서둘러 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상담 일기에도 썼듯 심각 전 단계의 우울증을 판정받기도 했다. 아마도 심신이 지치는 시기에 막 투입된 프로젝트 역시 무력감이 드는 순간들이 계속 겹치면서 번아웃을 가속화시켰다.


우리는 결정을 했다. 퇴사를. 이직도 준비되지 않은 퇴사를 ‘질러버렸다.’ 내가 결정을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이 나의 짐을 나눠 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가 결정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생활하지?


무섭고 두려웠다.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생활하지? 이렇게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찾을 때까지 그 기간이 무기한으로 길어질 수도 있다.

그땐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원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고, 그땐 번아웃이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다시 나를 소진시키는 일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도 무섭다. 하지만 이상하게 동시에 기대가 된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건강한 삶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끈기보다 끊기가 더 중요한 때가 온다.


무언가 꾸준히 하는 것을 스스로 최대의 장점으로 꼽는 나는 미련한 꾸준함은 오히려 무언가를 그만두는 게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끈기보다 끊기가 더 중요한 때가 분명 온다. 그럴 때 분명하게 끝을 내는 게 더 큰 세상과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다.


나는 대학교를 한 번도 휴학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졸업했다. 그러다 대학원에서 휴학을 결정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역시 지도교수의 폭언을 못 이겨 자포자기하듯 결정한 감도 없지 않았는데, 어찌 됐든 나는 또 다른 생산적인 목표 ‘어학연수’라는 핑계를 만들어 1년간 휴학을 했다. 전 세계인들이 로망을 꿈꾸는 뉴욕에서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받는 경험을 하고 돌아왔고 그 경험이 콕 집어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때 역시 꾸준히 하는 것을 끊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스스로를 던진 경험을 통해 스스로가 바뀌게 되는 ‘시작’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처럼 10년 후의 내가 이 순간을 회고하게 된다면 어떤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기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3개월 차 새내기 리추얼 메이커의 소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