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번아웃 디깅하기
번아웃 디깅하기의 효능
번아웃을 디깅할 수록 안개가 걷히고 구름 뒤로 밝은 빛의 해가 드러나는 기분이다.
‘환승이직’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게 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직 외에 다른 선택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꼭 어딘가에 취직하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글을 좀 더 써보고 싶다, 글쓰기 수업을 들어볼까? 디벨로퍼라는 업이 여전히 관심이 가는데 내 역량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내가 해온 일들에 커뮤니티 빌딩이라는 공통점이 있네? 등등.
나는 여전히 난데,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운 생명체를 마주한 것처럼 흥미롭고 신선해졌다.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의심
때론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의심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았나?
나는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대체 마케팅이라는 게 뭔지 혼란스러웠다. 디지털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등 나눠놓은 경계들에 ‘브랜드 마케팅’이란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건지 뚜렷한 바운더리를 갖고 싶어서 방황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케터의 윤리의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다.
갖고 있지 않고 하고 있지 않은 개인의 ‘공포감’을 공략해 무언가를 세일즈 하는 행위에 알레르기 반응처럼 넌더리가 났다. 마케터인 동시에 엄마인 소비자가 되면서 ’00하고 있지 않으면 나쁜 엄마다, 큰일 난다’ 하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마케팅 메시지를 접하면서 ‘마케터의 윤리의식’ 같은 것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노출 몇 프로, 전환율 몇 프로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면 개인의 커리어에서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실패 경험을 쌓은 소비자는 브랜드에 큰 실망을 하고 두 번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저버리는 것이 정말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마케팅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인과관계라며 자조하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 맞는 건가?
이 모든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의문들이 나를 가득 채웠고 나는 마케팅이 싫어졌다. 애초에 나는 마케팅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결론까지 내렸었다.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걸까?
내가 살아가고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다양하고 다정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점점 더 하나의 가치관, 치열한 경쟁으로 어린 학생들을 내몰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에 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힘들어졌다.
다들 고객가치지향,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외치지만 그 고객은 도대체 어떤 고객인가? 진정한 ‘고객을 위한 일’을 하려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