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소 Aug 21. 2024

브랜딩팀이 새벽부터 여고 체육대회를 응원하러 간 이유

브랜드 마케터의 일기록

첫 브랜드 캠페인이자 신학기 캠페인을 마무리 지으면서 동시에 5월이 다가왔다.


사실 '잠재력'이라는 것은 꼭 공부할 때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어떤 순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팀은 캠페인을 통해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어떤 순간을 일부러 만들어보려고 아이데이션을 여러 차례 했었다. 칠판 꾸미기, 딴짓 프로젝트 등...


하지만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어떤 순간을 만들기보다는 학생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라고 생각했고 '학사 일정 중에 그런 순간은 없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때마침 5월. 5월 하면 떠오르는 학사일정의 꽃(?)같은 체육대회라는 키워드가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체육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잠재력은 어떤 순간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캠페인 방향성을 설정했다.


우리는 체육대회하면 '반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고, 반티를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뻔한 디자인의 반티 말고, 요즘 유행하는 블록코어룩을 콘셉트로 설탭만의 디자인을 통해 '갖고 싶은 굿즈'로서 반티를 통해 대화를 건다면 아이들로부터 반응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STB Potential Club의 탄생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가 어떤 팀을 '스폰서십'한다는 콘셉트에서 착안하여 설탭 체육대회 스폰서십 캠페인. 나만의 우려였을지는 모르지만, 스폰서십이라는 게 학생들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보다는 조금 더 우리만의 타이틀이 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캠페인 타이틀은 'STB Potential Club'으로 정했다. 이는 사실 반티를 디자인하다가 생각난 아이디어인데 '설탭'이라는 표기 외에 우리만의 은어(?) 줄임말(?)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탭을 STB로 표기하면서 STB Potential Club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캠페인 기획뿐만 아니라 반티 디자인 또한 함께 진행했다. '시각디자인 전공'이라는 과거의 경험은 마케팅이나 기획 일을 할 때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음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오고 있다. 팀 내에 BX 디자이너가 계시지만 하필 타이밍적으로 반티 디자인에 리소스를 쓸 수 없게 되어 내가 진행하게 됐다. 블록코어룩을 탐구하면서 설탭만의 디자인, 10대 여학생들이 갖고 싶은 디자인을 고민하여 아래와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했고, 회사 내에서 간단한 선호도 조사를 해본 결과 다들 '갖고 싶다'는 코멘트를 해주셔서 자신감을 갖고 진행할 수 있었다.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응모 페이지를 설계할 차례. 이 역시도 내가 디자인하고 실행했다. 지난 <엄마 몰래 프로젝트>처럼 이 역시 아임웹으로 구현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은 마치 컴페티션처럼 설탭을 하고 있는 반 대표가 응모하여 입후보하면, 나머지 반 친구들이 응원을 하여 가장 많은 응원을 받은 반이 최종 선정되는 그림이었다.

이걸 구현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투표 시스템을 구현해야 했고, 그 투표 현황이 실시간으로 전광판처럼 보여야 했다.


입후보는 타입폼으로 구현하고 투표와 투표 결과 라이브는 멘티미터로 구현했다. 하지만 이 방식이 너무 복잡했던 나머지 학생들에게 다소 어리둥절한 경험으로 전달된 것 같다는 생각을 신청 기간 내내 했다. CS에 문의가 들어오고 엉뚱하게 기입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 대표와 학생들의 응원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결과적으로 반 전체가 설탭을 알게 되고 이 컴페티션에 몰입하길 바랐지만, 오히려 방식 때문에 신청 경험에서 캠페인에 대한 몰입이 깨진 것 같다.


이유를 회고해 보자면.

1. 콘셉트를 포기할 수 없어 한정된 기능으로 구현하다 보니 기타 페이지가 임베딩되어있는 '누더기'같은 페이지가 연출되었다.

2. 신청 방식이 복잡할수록 설명을 위한 글이 많아질 위험이 있는데 이걸 적절하게 글과 비주얼로 커뮤니케이션했어야 했는데 디자인 능력치가 달렸다.


욕심부린 것을 한정된 리소스로 아름 구현했다는 개인의 성취에 만족스럽기도 했는데, 동시에 기획자가 아닌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더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청 페이지

내가 디자인했던 신청 페이지


그럼에도 욕심내고 싶었던 한 가지


초기 기획할 때, 또 하나 욕심낸 것이 있었다. 바로 당첨된 1, 2, 3위 학교의 체육대회 당일 설탭 브랜딩팀이 가서 진짜로 열렬하게 응원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들이 잠재력을 발견하는 모든 순간에 설탭이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직접 가서 학생들에게 전달해야만 와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캠페인에서 80통이 넘는 손 편지를 썼듯​, 현실에서 어떤 접점이 생겨야 진심이 가장 크게 전달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달랑 반티만 보내주고 끝이 아니라 직접 그 반티를 입고 체육대회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리하여 체육대회 당일, 간식차와 함께 브랜딩팀이 함께 응원 간다는 방향이 정해졌고 급하게 1, 2, 3위 학생의 학교와 컨택, 간식차 수배, 리캡 영상을 위한 프로덕션 수배가 진행됐다.


사교육 브랜드가 형평성이나 공정이 우선되는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 들어가서 어떤 특정반을 응원한다는 그림이 내가 생각해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그게 순수하게 응원을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먼저 1, 2, 3위 당첨자 본인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체육대회가 10월에 있다거나 실은 체육대회가 아닌 체육 시간에 작은 행사 같은 것이라 간식차에 응원이 부담스럽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던 중 끝까지 답장이 없던 한 학생의 담임 선생님께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차근차근 기획 취지와 의도를 설명하니 (역시나 형평성 때문에) 한 반에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답변을 주시길래 그렇다면 전교생을 대상으로 간식차를 어레인지하여 체육대회를 응원하는 것은 어떻냐는 제안을 통해 설득할 수 있었다.


사전에 두 곳의 학교와 이야기를 진행하며 거절의 핵심은 형평성이었으니 그것을 최우선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요즘 학생수가 적어서 특히나 지방의 경우에는 더 적어서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300명 정도라는 점, 인당 5천 원 내외의 간식으로 어떻게는 조율한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 학교가 마지막 보루였고, 마침 체육대회 일정도 우리의 예상대로 5월 내에 치러지는 유일한 학교였기 때문에 확실하게 메이드 해야 했다!


결론은 내 설득 포인트가 잘 전달되어 학교 측의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어렵고 조심스러워서 캠페인 기간 내내 가장 신경 쓰였던 사교육 브랜드와 학교 간의 소통 경험. 그렇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진심은 통한다'


학창 시절 마지막 체육대회를 응원하러 출발!


우리와 연결된 반은 문경의 한 여고 3학년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3학년이라면 이제 학창 시절 마지막 체육대회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마지막'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더 조심스러웠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욱 컸다.

우리 팀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 4시에 본사로 집합해서 문경까지 내달렸다. 동이 트는 걸 보면서 도착한 학교의 교정은 아름다운 학교로 소문난 것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웠다. 나의 학창 시절이 생각나는 몽글몽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촬영 장비 세팅, 간식차 입차... 순차적으로 준비가 진행되는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당첨된 반이 우리가 지원한 반티를 입지 않은 것. 그 모습을 찍어야 하는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학년과 반별로 컬러 지정을 하기로 했고, 원하는 컬러를 선점하기 위해 신경전이 대단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쟁취한 반티를 포기하고 우리가 준 반티를 입을 수가 없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래, 반티 컬러를 지정하기도 하는구나. 처음 해보는 형태의 캠페인으로 나도, 팀도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당탕탕이었다. 이 캠페인을 내년에도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많은 체크리스트와 투두 리스트가 실시간으로 쌓였다.


본격적으로 체육대회를 시작하니 학생들의 열정에 보는 우리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수를 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도 서로 다독이며 괜찮다고 크게 말해주었다. 사실 그 모습이 가장 놀랐다. '누구 때문에'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는데 체육대회 자체에 몰입하면서 그것과는 별개로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학생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꼰대처럼 '요즘 아이들'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고쳐 잡는 계기가 됐다.


레퍼런스 조사에서는 알 수 없는, 현장에서 비로소 알 수 있는 인사이트는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온라인 서비스여도 결국 현실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 만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할 수 있었던 캠페인 리캡 영상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