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번아웃 디깅하기
요즘 유튜브 피드에서 ‘갓생포기’, ‘무한경쟁에서 기권’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보인다. (물론 필터버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내 알고리즘이 꼭 세상의 주된 관심이 아닌 걸 알지만 이 알고리즘이라는 게 점점 더 개인화된다기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본 것에 대해 누군가 이야기하다 보면 ‘어 너도?’할 때가 많기도 하고, 한국 콘텐츠를 보는 이상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다르면 얼마큼 다른 알고리즘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 어느 날부터인가 등장한 이 무한경쟁, 기권, 경로이탈과 같은 키워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여기에 이어 ‘그냥 쉬는 청년 44만 역대 최대'라는 제목의 기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한다. 거기에 온라인 쇼핑몰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게 익숙해질 지경에 이르면서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은 사람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물론 숫자로 살펴본다면 또 다른 인과관계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현상을 정리하는 텍스트만 봐서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무한경쟁의 중도 이탈자가 많아지는 것 같다.
취업 문제는 늘 문제였다.
지금 30대 초반인 내가 취업 시장에 나왔을 당시 취업이 쉽지 않았는데 단순히 그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난 이후로 취업 문제는 늘 문제였다. 당장 퇴사를 외친 마당에 다음 이직처를 구하는 일은 큰 걱정거리이다. 경력자가 되었는데도 취업 시장이 여전히 쉽지 않다니, 순간 훅하고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2022년 상반기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 사원의 평균 스펙은 학점 4.5점 만점에 3.7점, 토익은 990점 만점에 846점이었다. 한 개 이상의 자격증을 보유한 비율은 72% 였으며, 공모전 수상 경력을 가진 비율은 43%, 인턴 경력이 있는 비율은 38%였다. 전년도 대비 자격증 보유 비율은 9%, 인턴 경력자 비율은 5%씩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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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조사한 결과, 2020년 하반기 기준 평균 신입 사원 경쟁률은 36:1로, 2019년 20:1 대비 약 두 배 증가했다. 1994년 하반기 삼성, 현대, 엘지 등 주요 대기업 공채 경쟁률이 6~7:1 이었던 것에 비하면 무려 여섯 배 높은 수치다.
- <번아웃 세대>, 곽연선
그런데 여태까지 잘해오다가 하필 이제 와서 중도이탈을 외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까? 왜 무한 경쟁에서 기권을 외치는 걸까?
우리 모두 비교와 경쟁이라는 키워드에 이미 무감각해질 만큼 익숙해졌고, 불특정다수와의 경쟁에서 ‘나’는 무조건 뛰어나야 한다. 이런 압박은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많은 어른들로부터 조장되며 시험 점수하나로 내 인생이 판가름된 것 같은 절망감을 ‘조기’에 경험하게 된다.
2007년 방영된 EBS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다큐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평균 세 개 이상의 사교육 기관에서 하루 2시간 37분 동안 공부한다. 학업에 대한 압박 속에서 무려 27%의 초등학생이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할 정도였다.
-<번아웃 세대>, 곽연선
이런 끝나지 않는 경쟁 사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라는 고민을 여유 있게 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학업에만 집중했다고 우리가 꿈꾸는 대로 탄탄대로 인생이 펼쳐질까? 소위 말하는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을 쟁취하면 경쟁에서 승리한 걸까?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학생들의 고민
사교육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1년도 안되어 번아웃이 온 이유는 이런 경쟁 사회에 동조하듯 무한 경쟁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미션과 비전은 적극 동의하나 그걸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나의 가치관이 매 순간 충돌했다. 아이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신 성적에 도움이 되는 부활동을 해야 하나’, ‘수능에 올인하려 학교를 자퇴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고민은 내가 학생 시절이었을 때와 비교하여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다.
나 역시 이직처를 마련하지 않고 퇴사해 버렸다. 나는 경쟁에서 뒤처진 것일까? 아마도 내 또래의 사람들이 ‘이제 와서’ 기권을 선언하는 이유는 이렇게 달려왔는데 앞으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아래를 봐도 똑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이제야 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나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할 여유 없이 달려온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의문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이 정의 내리지 않으면 누구도 정의 내려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생 숙제를 매번 뒤로 미룬다고 숙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나를 늦게 알면 늦게 알수록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들 앞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기 마련이고 그렇게 존재 가치에 대한 공허만 남는 게 아닐까.
이제 30개월이 된 아이를 보며 이 아이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은 또 어떤지 궁금하고 동시에 걱정도 된다. 앞으로 20년 후엔 우리는 어떤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있을까? 지금 경쟁에서 기권을 선언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