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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Sep 06. 2020

살아가기, 쓰기

《지상의 노래》, 이승우

한 여행 작가가 죽기 전에 미완성 원고를 남긴다. 그 안엔 천산 수도원이란 곳이 마지막 꼭지로 담겨 있었다. 작가의 동생은 우연히 원고를 발견하고, 출판사 관계자들과 답사를 떠난다. 오래전에 버려진 수도원은 천산 꼭대기 절벽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그곳 지하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수많은 방 안 흙벽을 가득 채운 성경 구절들이었다. 대체 이 벽서는 누가 왜 적은 것일까. 이곳은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살았으며, 왜 홀연히 버려진 것일까.


동생의 도움으로 작가의 유작은 출간되지만 천산 수도원과 벽서의 존재는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한 교회 역사학자 차동연이 우연히 발견하여 기독교 신문에 기고한 게 유일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기사는 부족한 추론에 불과했다. 그게 우연히 젊은 시절에 수도원을 눈앞에서 목격한 장의 귀에 들어가고, 장의 입을 통해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둘씩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후는 사촌누나를 범한 자에게 위해를 가한 후 천산 수도원에 숨어든다. 그곳에서 ‘형제들’이 알려주는 대로 “모든 것을 비춰” 내는 “큰 거울”인 성경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후가 성경 속 이야기인 압살롬, 다말, 암논의 일화를 통해 마주한 건, 사촌누나를 사랑한 마음과 그게 불러온 죄책감이었다.


한정효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의 오른팔이었다. 군인이기에 복종을 제일의 규율로 받들어 살아온 그는 아내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고, 아내의 유품인 성경을 읽으며 삶을 되돌아본다. 거울 같은 성경은 한정효의 삶을 다시 비추어낸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아내와 시대를 향한 죄책감이다. 독재자는 폭로를 통해 속죄하려는 한정효의 의도를 알아채고, 그를 천산 수도원에 감금한다.


이후에 펼쳐지는 후와 한정효의 삶은 죄책감이 추동한다. 이 죄책감의 근원을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운명을 만드는 건 누군가의 욕망”인데, 자기 욕망이 작동한 곳에서 누군가가 당했을 상처를 발견한 자에게 그 감정을 무시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죽기까지 선택한 건, ‘지상의 노래’를 쓰는 일이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하늘을 꿈꾸던 자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쓴 노래다. 후와 한정효는 몸으로 그 노래를 써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쓰는 건 누군가에 의해 계승된다. 여행작가의 미완성 원고가 동생에 의해 완성되었듯, 그 글이 차동연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누군가의 증언들이 보태져 새롭게 쓰이듯 말이다. 성경이 쓰여 내려져 온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은 앞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이어 받아 다시 쓰고 새롭게 써나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쓰인 이야기를 다시 쓰고, 보태어 쓰고, 새롭게 쓰며 이 삶의 고달픔을 달래 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쓰는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린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써야 할까.


#민음사 #지상의노래 #이승우 #오늘의작가총서 #다시읽게될줄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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