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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an 29. 2021

저 밝은 달 아래 함께 놓인 존재들

<달밤>, 이태준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


때는 일제강점기, 경성의 성북동으로 이사 온 ‘나’는 방바닥에 누워 새삼스러운 말을 내뱉는다. 지금은 부촌으로 유명한 성북동은 조선시대만 해도 한양도성의 북쪽을 뜻하던 지명으로 성 바깥 한적한 교외였다. 화자의 말에는 도시를 꿈꾸지만 아직 미처 도시가 되지 못한 성북동의 처지가 담겨있다.



화자에게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돋워”주웠던 건 신문배달원 황수건이다. “태고 때 사람처럼 그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러운 눈을 가”진 황수건은 동네에서 유명한 “못난이”이자 “반편”이었다. 못난이야 어디에든 있겠지만 서울 같은 도시라면 대놓고 나와 행세하지 못할 게 시골처럼 마음 놓고 다니니 “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들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던 것이다.


화자는 매일 찾아와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이는 수건과 금세 친해진다. “그와는 아무리 오래 지껄이어도 힘이 들지 않고, 또 아무리 오래 지껄이고 나도 웃음밖에는 남는 것이 없어 기분이 거뜬해지는 것도 좋았”기 때문이다. 수건이 나중에 신문배달 일을 잃자 화자는 마치 “가까운 친구를 먼 곳에 보낸 것처럼, 아니 친구가 큰 사업에나 실패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못 만나는 섭섭뿐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까지 한다.


실의에 빠져있는 수건에게 화자는 과일장사나 해보라며 돈 삼원을 쥐여준다. 하지만 수건은 역시나 밑천을 까먹고 급기야 아내까지 달아나는 불운을 겪는다. 염치가 없어 수건은 화자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둘은 한동안 만나지 못하는데, 어느 날 ‘나’는 술 취한 수건이 노래를 부르며 휘적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화자는 “아는 체하려다가 그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몸을 감춘다. 넌지시 수건을 바라보며 생각할 뿐이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화자는 시종일관 수건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서술한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따뜻하지만 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하다. 있는 자의 세계와 없는 자의 세계, 식자의 세계와 무식자의 세계, 지식인의 세계와 못난이의 세계, 도시와 시골, 근대와 전근대, 쉽게 섞이지 못하던 두 세계를 이어주는 건 수건에게 유감한 듯하다던 저 달밤이다. 둘은 결국 저 밝은 달 아래 함께 놓인 존재들이기에, 화자의 동정과 연민은 그저 하찮은 우월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달밤 전문: http://ko.kliterature.wikidok.net/wp-d/57ea2822d7bdad5d015ffb6f/View)


성북동에 위치한 상허 이태준의 가옥. 이태준은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이곳에 머물며 글을 썼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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