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오늘날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의 대명사이며,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악의 대명사다.” 20세기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폭력의 세기였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장면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사건일 것이다. 하나 세간의 이런 통념과 평가는 과연 온당한 것일까? 홀로코스트 말고도 또 기억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일까?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2021, 글항아리, 함규진 옮김)은 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은 히틀러의 정치인생 첫머리에서부터 예견된 건 아니었다. 승승장구하던 나치 독일이 시선을 동쪽으로 돌려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한 1941년, 곧장 무너질 것 같던 전선이 한없이 늘어지게 되면서 국가사회주의라는 히틀러의 기획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붕괴를 더디게 하기 위해 붙잡은 것이 바로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이었다. 1941년 본격화된 광기 어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1945년까지 약 1000만 명의 무고한 인명 희생을 낳았다.
히틀러에 다소 가려진 감에 있지만 소련의 스탈린 또한 못지않은 학살자였다. 1930년대 본격화된 공산주의 체제 구축을 위해 소련은 주변 국가들을 내부 식민지로 삼으며 착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시된 경제 5개년 계획과 집단농장 정책으로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수백만 명이 말 그대로 굶주려 죽고, 대공포 시기에 벌어진 학살까지 포함해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다.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놓인 땅, “블러드랜드Bloodlands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에 이르는 유럽 대륙의 중앙부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번갈아 땅을 차지하던 1930년대부터 세계대전의 막이 내린 1945년까지 약 12년간 이곳에서 1400여만 명이 학살당했다. “희생자들은 주로 유대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발트 연안국인들로, 그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극우 파시즘과 극좌 공산주의라는 정반대에 놓인 두 체제가 번갈아 통치한 블러드랜드는 왜 인류 역사 최악의 학살 현장이 된 것일까? 둘은 이념 좌표만 놓고 보면 한참 멀어 보이지만 둘 다 유럽의 후발국가라는 점, 제국을 꿈꿨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했다. 또한 실의에 빠진 자국민들에게 유토피아라는 허상을 제시하는 정치력이 있었고,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라는 무시무시한 이데올로기를 한껏 활용할 줄 알았다. “특정 나라가 선의 보루이며 그것이 온통 악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면, 어떤 타협이든 정당한 것”이 되고 “무슨 짓을 벌이건 괜찮은 것이 된다"라는 무서운 논리는 한마을과 한 도시를 그야말로 통째로 몰살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유대인 출신 망명 학자 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이 둘을 ‘전체주의’라는 이름 아래 묶어 분석했다. 그의 전체주의론은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의 속성에 집중하지만 블러드랜드의 참혹한 학살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과연 인간성의 상실, 악의 평범성과 같은 분석들이 블러드랜드에서 일어난 참혹한 학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아렌트가 주목하는 집단수용소, 그중에서도 아우슈비츠는 분명 대량 학살의 절정이나 전체 학살의 역사에서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말하자면 “아우슈비츠는 <죽음의 푸가>의 ‘코다*’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피에 젖은 땅》에서 “오랫동안 이론이 실제를 넘어서고, 오해가 두드러진 경향”이 있는 유럽의 대량학살에 대해 “확실히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독일어, 러시아어, 이디시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등 10개 언어로 된 숱한 문서들, 예컨대 총살되어 숲에 묻혀있다 파헤쳐 진 시신 외투 주머니에서 들어있던 일기,희생자들이 무더기로 묻힌 구덩이에서 시체와 함께 발견된 편지, 전쟁통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공문서 등의 기록들 따위를 쫓아가며 ‘블러드랜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톺아간다.
그에 의하면 “나치와 소련을 비인간이라고 치부하거나 역사적 이해를 넘어선다고 보는 일은 그들이 놓은 도덕적 덫에 걸리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부인해버리면 윤리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이해를 포기하는 일”은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질문’은 이 거대한 기획의 나침반이다.
무고하게 희생된 수천만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그 숱한 목소리를 모아 그려내는 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 쉽게 굴복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외치는 일, 외치고 또 외치는 일뿐”이어도 멈추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 인간은 역사를 통해 성찰하고, 이 참혹한 비극 앞에 겨우 희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는 또한 역사학의 가장 오래된 기획이기도 하다.
*악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