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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un 09. 2022

책에 담긴 마음을 만나는 방법

2022 서울국제도서전

벌써 5년 정도 됐으려나.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후로 매년 이맘때면 숙제처럼 서울국제도서전에 간다. 책을 만들고 읽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축제의 자리니 안 갈 수가 없다.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 여파로 다른 곳에서 열리던 도서전이 올해는 다시 삼성동 코엑스홀에서 열렸다. 넓은 홀을 가득 메운 책들과 사람들을 다시 보니 더 반갑고 설렜다.


6월 3일 금요일 오전 11시, 마침 비번이라 문 열자마자 땡-하고 도착했는데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입장을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평일 오전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러 온다고? 곳곳에 학교에서 현장학습 온 학생들도 보였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종종 섬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있으니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일단 전시들부터 둘러봤다. 주제전시 <반걸음>은 세상을 변화시킨 최초의 '걸음'을 다룬 책들에 관한 전시였는데, 지속가능성을 꿈꾸는 여러 기업들도 함께였다. 다분히 코로나 이후를 염두에 둔 전시였다. 기획전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은 쏘쏘했고, 특별전시 <책 이후의 책>은 책의 역사(종이-음성-전자)를 되돌아보게 해서 흥미로웠다.


그다음은 출판사 부스들이었는데, 꽤나 넓어 다 돌아보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전날 당직 근무를 서서 좀 피곤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빼먹지 않고 다 둘러보기로 했다. 대형 출판사 부스는 책도 많고 사람도 많았지만 별로 정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대형마트에 쫘르르 진열된 상품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굳이 이런 곳에 와서까지 봐야 하나 싶었다. 개중에 몇몇 출판사들은 작가들을 모셔놓고 사인회를 하기도 했는데, 신작을 내지도 않는 작가들도 있어서 의아했다. 다 마케팅이겠지만. 그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은 독립출판사들이 모여있는 부스도 있었는데,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대체로 내 취향과는 별로 맞지 않아 딱히 눈에 들어오는 책은 없었다.


내가 주로 시간을 내어 둘러본 곳은 대형 출판사와 독립출판사 사이에 있는 중소규모의 출판사들이었다. 어린이책, 종교 서적, 학술 서적 등 저마다 다양한 콘셉트가 눈에 들어왔다. 차근차근 내 마음에 들어오는 책이 어디 없을까 조심스럽게 구경했다. 묘한 설렘이 있었고, 하나하나 부스를 지나칠 때마다 약간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작게 사인회를 하거나 책을 사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등 소소한 이벤트도 열렸다. 예전에 도서전에서 만났던 출판사들 중 보이지 않는 곳도 더러 있었고, 전보다 규모가 커진 곳도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이번 도서전에서 내가 만난 책은 모두 일곱 권이다. 나름의 키워드를 꼽아보자면 #에세이 #고양이 정도를 들 수 있으려나. 평소에 굳이 에세이를 찾아 읽진 않는데, 이번엔 왠지 모르게 끌렸다. 삶에 뿌리내린 솔직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달까. 고양이는 집사가 된 지 2년 정도 되기도 했고, 최근 둘째 고양이 입양 절차도 밟고 있어서 더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에 다른 집사들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읽는고양이'나 '야옹서가'처럼 출판사 이름에 고양이가 들어간 곳은 괜히 더 머무르면서 구경하기도 했다. 집사로서 갖는 동질감 때문일까. 정작 '책읽는고양이'에 고양이 관련 책이 없는 건 함정이다.


이런 책들을 골랐다.


1. 악스트 2018.11/12(은행나무)

-은행나무 부스에서 악스트 과월호를 할인해서 팔았다. 좋아하는 작가가 커버스토리에 나온 게 없나 찾아봤는데, 몇 안 남은 이기호 작가를 찾았다!


2.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보경스님, 권윤주, 불광출판사)

-먼저 예쁜 일러스트에 매혹되고, '최선을 다해 대충 살아가는 고양이의 철학'이란 부제에 끌렸는데 스님이 산사에서 길냥이를 돌보며 적은 고양이 에세이란 걸 알게 되자 완전 넘어가버렸다.


3.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아침달)

-여러 시인들이 쓴 반려묘에 관한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이다. 중간중간에 시인들이 반려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싶었다. 이 책과 세트로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란 반려견 시집도 있었는데, 참 깜찍한 기획이다.


4. 고양이를 잘 찍고 싶으세요?(고경원, 야옹서가)

-엽서책으로 고양이 잘 찍는 방법 10가지와 길고양이 사진 26장이 들어가 있다. 옆지기 선물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골랐다. 무려 이십 년 넘게 고양이를 찍어 온 작가이자 야옹서가 대표의 사진들이라 그런지 고양이들이 사진 속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동네에 길냥이들이 많은데 언제 한번 실습해 봐야겠다.


5. 내향인입니다(진민영, 책읽는고양이)

-요 근래 일터에서 여러 관계들에 치이며 내 기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차였다. 나는 왜 이럴지, 내 마음은 왜 이런지,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른 책이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훑어봤더니 '내향인이라도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내향인으로 잘 지내는 방법'을 담은 에세이다.


6. 일본적 마음(김응교, 책읽는고양이)

-일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늘 있었는데 막상 믿고 볼만한 책을 못 찾았더랬다. 차분히 훑어보니 일본에 대해 알면 좋을 것들이라든가, 여러 문화코드들에 담긴 일본적 마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 같았다.


7.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양혜원, 책읽는고양이)

-독서모임에서 <박완서 읽기>를 계획하고 있어선지 눈에 들어온 책이다. 박완서의 삶과 저자 자신의 삶을 넘나드는 문장들 사이로 여느 학술서보다도 더 깊은 박완서 이해가 담겨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저자 강연회가 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미리 신청하지 못해 참여는 하지 못했다.



도서전의 백미는 역시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책들과의 우연한 만남이다. 저마다 출판사에서 얼마나 애정을 갖고 만든 책인지 느껴지기도 하고, 소개받기도 하며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이란 매체는 그냥 종이와 활자로만 만나기 마련인데, 그 책에도 사람들의 손길과 마음이 담겨있음을 새삼 알게 해주었다. 도서전에서 만난 책들은 그 책에 담긴 마음들까지 만난 것 같아 더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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