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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ul 03. 2022

한해 농사지은 기분

매실청 담그기

봄내 따스한 바람 맞고 푸릇푸릇 해진 매실은 6월이면 여름님 만나 발그레 노르스름해지고 빨긋해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님 만나 쑥스럽기 때문일까. 여름이 무르익듯 매실도 같이 자라난다.


매년 이맘때면 매실청을 담근다. 벌써 7년 정도 됐으려나. 매실청은 실로 요긴하다. 요리에도 쓰이고, 속 안 좋을 땐 따뜻한 차로 만들어 마시면 속이 편해진다. 여름철엔 플레인 탄산수와 섞으면 탄산음료 안 부러운 건강음료 매실 에이드가 된다.


사실 올해는 그냥 건너뛰려고 했다. 작년에 무리해서 많이 담근 매실청이 좀 남아 있기도 했고, 요즘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쉬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는데, 마을 생협에서 매실을 마지막으로 주문할 수 있는 기회란 소식을 듣고는 막차를 탔다. 왠지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았다.


올해는 구례산 무농약 황매실 10kg를 주문했다. 도착 예정일인 목요일에 말도 안 되는 폭우가 내려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리 없이 잘 왔다. 상태도 아주 훌륭했다. 산지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한 매실이라고 했는데, 마지막답지 않게 상태가 좋았다. 청매실과 달리 황매실은 익어서 터지거나 상처 난 매실이 어느 정도 섞여 있기 마련인데, 1-2알 정도 말고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주 좋았다.


상자를 받고 집에 하루 들여놨다. 매실향이 은은하게 방안을 매워 향기로웠다. 상자를 열어보니 초록빛, 노란빛, 빨간빛이 한데 어우러져 곱게 생긴 매실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졌다.


일정 때문에 하루 묵히고 불금의 밤에 홀로 매실청을 담갔다. 옆지기와 함께 하려 했지만 그냥 시간이 넉넉한 내가 하기로 했다. 매실은 원래 한 번 물로 싹 씻어주고 건조해 줘야 가장 좋은데, 무농약 매실이고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나는 보통 마른행주로만 닦는다. 행주로 닦고, 꼭지를 따고, 무게를 재고 미리 열탕 소독해놓은 유리병에 담근다. 이렇게 매실 5kg를 작업해 넣고, 5kg 유기농 설탕 포대를 한꺼번에 넣어준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둘이 했으면 금방 끝났을 일인데, 혼자 하니 매실청 20kg(매실 10kg, 설탕 10kg) 담그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상태를 수시로 봐가면서 설탕과 매실이 한 몸 이루도록 잘 저어줘야 한다. 100일 정도 지나면 매실청이 되어 먹을 수 있다. 그때까지는 작년에 미리 만들어 비축해놓은 매실로 버텨야 한다.


커다란 유리병 2개에 한가득 매실청을 담가 놓으니 마음이 아주 든든했다. 좀 과장하자면 한해 농사지은 기분이랄까. 한여름과 겨울, 향긋한 매실청과 함께 날 생각하니 은근히 의지가 됐다.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다.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이런 노동이라면 얼마든지 신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실청 20kg(황매실 10kg, 설탕 1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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