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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un 26. 2022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달뜨다 / 설핏 / 빨긋빨긋하다 / 고즈넉하다 / 끄느름하다


평일 하루 휴가를 냈다. 마을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나들이를 같이 가자고 초대했기 때문이다. 마을학교에선 종종 마을 이모삼촌들을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평소 아이들을 보기 힘든 나 같은 이들에겐 선물 같은 시간이다. 보통 소풍이라 부르는 걸 마을학교에선 '긴나들이'라 한다. 우리말이라 그런지, 한자어보다 왠지 더 정겹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섰다. 학교는 우리 집 창 바깥으로 보이는 곳에 있을 정도로 가까워 금방 도착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미리 와있었다. 다들 오늘만 기다렸나보다. 오늘 내가 함께 할 친구들은 1~4학년 친구들이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있어서 찾아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모두 달뜬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장마철에 낀 날이라 나들이를 갈 수 있을까 염려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하늘이 도왔는지 바로 어제까진 비가 엄청나게 내렸는데 밤늦게 그쳤다. 해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종종 얼굴을 드러내 환한 햇살을 내어주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북한산 둘레길을 통해 북한산 생태숲까지 걸어갔다가 시간을 보내고서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게 오늘 계획이었다. 출발한 지 5분여 정도 지나 둘레길 흙을 밟았다. 비온 뒤의 산은 더욱 푸르렀고 싱그러웠다. 산길 곳곳에 개울이 생겼고, 계곡에선 콸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했다. 간밤 비바람으로 쓰러진 나무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내가 무얼 물어보지 않아도 곧잘 먼저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내가 심심하리라 생각해서 꺼낸 말들은 아니었겠지만 내심 배려 받은 것 같아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솔직함이 고마웠다. 싱그럽고 투명한 아이들의 기운이 내 마음도 물들이는 것 같았다.


북한산 생태숲에는 여러 군데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바로 아래 아파트가 있어서 주말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고 하는데, 오늘은 평일이라 한산했다. 큼지막한 정자와 놀이터 위로는 해먹이 여러 군데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도시락을 까먹고는 해먹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집놀이를 했다. 서로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초대하기도 하고, 빼앗기고 뺏기며 놀았다.


나도 짬을 내 해먹에 누웠다. 구름 뒤에 숨어있다가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해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었다. 설핏 잠들었는데 주변이 너무 썰렁해 놀라 일어났다.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재잘대는 아이들에겐 추위가 깃들 틈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춥지 않냐 물어보니 "아뇨, 삼촌은 추워요?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까 춥지요!"라는 말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는 잣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는 나무 그네와 평상들이 있었다. 청설모도 꽤나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땅과 나무를 오르내리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는 이 나무 저 나무 마음대로 드나드는 모습이 가볍고 경쾌했고 자유로워 보였다.


내가 주로 맡은 역할은 이동 간에 아이들을 살피고,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게 놀도록 살피면서 자유롭게 어우러져 노는 일이었다. 무얼 하며 저리 재밌게 노나 살랑살랑 걸으며 구경하는데, 아이들이 산딸기를 따서 건네주기도 했다. 빨긋빨긋한 산딸기는 빛깔만큼이나 새콤했다. 푸르른 녹음에 돋아난 빨강이 아름다웠다.


아이들 그네를 밀어주기도 하고, 혼자 그네에 앉아 고즈넉하게 나무나 하늘, 청설모 따위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땅바닥은 흙과 잣나무 바늘잎으로 가득했는데 밝을 때마다 폭신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아이들도 그게 좋았는지 계속 뛰어다니며 놀았다.


오후 2-3시쯤 됐으려나. 사방이 끄느름해지고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새참을 먹고 산에서 내려왔다. 돌아가는 길에는 버스를 탔다. 아직 버스를 탄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은 서로 버스벨을 먼저 눌러보고 싶어 했다. 한 아이가 내게 어디서 내리는지 몇 차례나 물어보고 확인하고는 버스벨을 눌렀다. 입안엔 웃음이 한가득,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나는 그게 부러웠다.



달-뜨다 [동사]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조금 흥분되다.

설핏 [부사] 풋잠이나 얕은 잠에 빠져든 모양.

빨긋빨긋-하다 [형용사] 매우 빨그스름핳다

고즈넉-하다 [형용사] 1. 고요하고 아늑하다. 2. 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다.

끄느름-하다 [형용사] 날이 흐리어 어둠침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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