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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Jul 10. 2022

소서가 막 지났을 뿐인데


길었던 장마도 차츰 자취를 감추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려나 싶은 한 주였다. 이따금씩 바람도 불고 소나기도 내렸지만 후텁지근함은 더 짙어져갔다. 작은 더위라 이름하는 소서(小暑)가 막 지났을 뿐인데, 이제 막 여름의 한복판에 진입한 것 같았다.


회사 건물에 종종 점심을 먹고 들르는 공공도서관이 있다. 이번 주에도 여느 때처럼 무심코 들렀는데, 사람이 가득 차 있어 놀랐다. 왜 이렇게 많아졌을까, 벌써 방학이라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둘러보니 연령대가 꽤나 높은 분들이 많이 계셨다. 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피서 온 이들이겠거니 싶었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회사 근처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 둘을 보곤 119에 연락하기도 했다. 한 분은 술집 근처에 누워 있었고, 다른 한 분은 주변에 술병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술에 취해 잠들었겠거니 싶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해 술에 빠져든 걸까. 다행히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확인한 결과 이상이 있진 않았다,


짜증지수는 날로 높아져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옆지기와 대화를 나누며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더불어 살아가면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야 늘 만나기 마련인데, 더위가 참을성을 앗아갔는지 쉽게 소리가 높아졌다. 한참 후에는 그렇게 반응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어제는 자차를 끌고 나갔는데, 그만 도로 한복판에서 차 시동이 꺼져버렸다. 그 후론 시동이 켜지지 않아 한동안 민폐를 끼쳤다. 겨우 견인차를 불러 카센터에 가서 확인해 보니 꽤나 크게 고장이 났더랬다. 더위 때문에 차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니겠지만 이 '작은 더위'가 괜히 심상치 않았다. 그냥 넘겨짚어지지 않았다.


퇴근 후 하늘을 올려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씁씁한 마음도 스쳐갔다. 4년 전 무더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8년의 여름을 생각하면 열불 같았던 전철이나 버스와 함께 잊지 못할 두 죽음도 함께 떠오른다. 올여름은 더 더워도 괜찮으니 그런 일은 차마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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