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한 달에 두 번 독서모임을 한다. 모두 내가 준비하고 이끄는 모임이다. 예전엔 두 모임에서 같은 책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더 다양한 책을 읽고 싶어 겹치지 않게 다른 책들을 읽는다. 책은 다양하게 읽을 수 있지만 그만큼 준비하는데 품이 더 많이 든다.
독서모임은 보통 이렇게 준비한다. 먼저 책을 읽는다. 독서모임에서 나눌 만한 이야기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처음은 그냥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읽히는 대로 읽는다. 이야기의 세부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다시 한번 꼼꼼히 읽을 테니 말이다.
독서모임이 가까워오면 책을 다시 한번 읽는다. 이번에 읽을 때는 그냥 읽지 않는다. 먼저 장별로 내용을 정리하며 읽는다. 정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머릿속에 책 내용이 더 자세히 들어온다. 이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수십 쪽이 되는 내용의 핵심을 줄여서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려니 쉬울 리가 없다.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찾으면서 책이 눈에 더 잘 들어오지만 그렇게 정리하는 건 어찌해도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장 손에 지도가 없으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됐으면 함께 이야기 나눌 발제문을 작성한다. 정리하며 틈틈이 표시해 둔 이야깃거리들을 다시 보며 논제를 만든다. 논제 수는 보통 여섯 개 안팎으로 한다. 책의 한 부분을 정하는 것도, 그 부분에 대한 문제를 만드는 것도, 정제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쉽지 않고 품이 드는 일이다. 혹시 지엽적인 부분을 다루는 건 아닌지, 논제를 한 번에 읽고 이해할 만하게 풀어썼는지, 한쪽으로 의견이 쏠릴 만한 논제는 아닌지, 의견을 말하기에 어렵거나 추상적으로 적은 건 아닌지 등등 발제문을 준비하면서도 따져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이런 고민들은 아무리 시간을 많이 할애해도 실제 모임을 하기 전까지는 풀리지 않는다.
독서모임이 직업도 아닌데 고통스럽기만 하면 계속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이 과정이 고통스럽기만 하진 않는다. 다시 읽는 과정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즐겁기도 하다. 책은 다시 읽으면 비로소 음미할 수 있다. 좋은 책은 서사, 인물, 풍경, 묘사 등등 여러 가지 맛을 갖고 있어서 요리보고 조리보며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처음 읽었을 땐 못 보던 것들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마치 책이 만든 세계 안에 폭 잠겨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은 대체로 즐거운 일이다.
발제문을 작성하면서는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질문을 하고 이야길 나눠야 할까,라는 질문은 책의 수많은 부분 중에 어떤 부분을 뽑아야 할까란 말이고, 결국 책의 의미와 중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혼자 묻고 되묻는 과정을 통해 책의 중심부에 조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무언가 더 깊이 이해했다는 건 그만큼 내 이해의 폭이, 내 세계가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대체로 어떻게 독서모임을 준비하는지 적어봤는데, 사실 꼭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 통계 낼 일은 없겠지만 나처럼 발제문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는 건, 처음 시작이 그러기도 했지만, 이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어떨 땐 고와 락이 마치 한몸처럼 느껴진다. 고통스럽지만 즐거우니 견딜 수 있고, 즐겁지만 고통스러우니 지속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여기 적진 않았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모임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그중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이 없었다면 계속 해나갈 수 없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