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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Aug 31. 2022

자연을 닮은 시들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최하림 시선집


시를 읽을 때면 자꾸 나도 모르게 해석하려 하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내 이해와 해석의 그물망에 포섭되지 않는 시들은 금방 지루해지고, 시는 멀어진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시를 읽다 말다 해왔는데, 요즈음 최하림의 시를 읽으며 시는 원래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 것이었지, 새삼 깨달았다. 시는 있는 그대로 읽으며 그저 시가 만들어내는 풍경에 몸을 담그고, 시가 자아내는 정념과 분위기에 머무르면 되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건 아마도 최하림의 시가 자연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의 시는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구부리거나 자른 흔적이 없었다." 시인 이원의 말이다. 최하림의 시를 가만히 읽으면 마치 나무를 보듯 구름을 보듯 강을 보듯 계절이 변하고 시간 속에 일상이 포개지는 풍경이 그저 내 안에 들어온다.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어들은 이따금씩 눈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게 참 좋았다. 내게 시는 자유였는데, 오랜만에 실로 자유를 느꼈다.


최하림의 시선집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는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를 맞아 나온 시선집이다. 시인의 제자 6명이 시기별로 작품을 나눠 각자 10개씩 작품을 뽑고 말을 붙였다. 시기별로 시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고, 시인과 인연이 있는 이들의 말과 사연까지 덧붙여져 친절하게 읽을 수 있다. 아마 시기별로 중요한 시들을 고르고 골랐겠지만 시인들이 저마다 가려낸 시들이 자기들의 시 세계와도 닮아 있는 것 같아 그런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이제 나는 최하림 시 전집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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