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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May 05. 2020

우리는 모두 코로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페스트》(1947), 알베르 카뮈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질 땐 하루하루가 난리였다. 윙윙 울려대는 긴급재난문자와 속보는 없던 불안감을 만들어냈고, 누군가의 불행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악행들이 속속들이 알려졌다. 원가가 천원도 안 되는 마스크 가격이 수십 배가 치솟고, 매점매석, 보이스피싱 등 장난질 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인종차별, 혐오범죄, 강도 등 사인간의 범죄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 마스크, 의료장비를 공항에서 강탈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상황이 나아진 우리야 괜찮겠으나 아직도 하루에 수천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해외는 아직도 아비규환이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코로나19 덕분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상한가다. 전염병을 주제로 한 책이야 이것뿐이겠냐만 카뮈의 이름값을 능가할 만한 건 없고, 저작권도 자유롭겠다 출판사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분위기다. 최근엔 설 선생이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와 소개까지 했다니 이쯤 되면 안 팔리는 게 이상하다. 안 그래도 재택근무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은데 독서가들이 안 읽고 배기겠는가.


이 책은 제목부터 스폰데, 당연히 페스트에 관한 소설이다. 평화롭던 휴양지 알제리 오랑에 어느 날 갑자기 페스트균이 나타나 급속도로 퍼진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굳이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를 들자면, 지금 일어나는 상황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는 걸 들 수 있을까. 작년이나 재작년에 읽었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법한 이야기들이 코로나를 겪으니 쏙쏙 이해되고 공감된다. 언젠가 읽을 책 목록에 《페스트》를 넣어놨다면, 죽기 전에 카뮈의 책 한 권쯤은 읽어봐야겠단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적기다.



소설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페스트가 나타나고 의사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고통받으며 노력하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장 타루라는 사람이다. 타루는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홀로 보건대를 만들어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앞장선다. 왜 저렇게 무모하게 행동할까 궁금해질 즈음 타루 스스로 고백한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을 다 바쳐 페스트와 투쟁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아 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수천 명의 죽음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의했었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런 죽음을 야기했던 행동들과 원칙들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그 죽음을 부추겼다는 것을 알았어요.”


타루는 어린 시절 재판소에서 범죄자들을 향해 사형 선고를 내리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아버지는 그것이 참된 가장의 모습이라도 되는 양 아들 앞에서 한껏 폼을 잡았고, 어린 타루의 마음은 병들어갔다. 그러니까 타루의 저 무모한 행위는 자아에 덧칠된 부채의식을 벗어내기 위한 속죄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타루는 인간 실존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단언하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페스트균을 갖고 있다는 건데, 좀 더 이해될 법하게 바꿔보자면 악의 씨앗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기야 괜히 사람들이 마스크로 폭리를 취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건 아닐 게다. 행동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애초에 사람들 안에 악의 씨앗들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사건과 정황을 만나 발아했을 뿐인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 진정이 될 테다. 더 큰 재앙은 결국엔 없어질 바이러스 따위가 아니라 끈질기게 우리 안에 남아 기생할 코로나가 아닐까. 그러니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목 놓아 기다리기 전에, 짜증내며 푸념하기 전에 우리 안엔 어떤 녀석이 자리 잡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딘가 있을지 모를 병균 따위한테 잡혀먹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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