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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May 18. 2020

허클베리 핀들이 모여 살았을 것 같은 마을 이야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1987), 패니 플레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우리말로 하면 풋토마토튀김인데 미국 남부 지역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지금도 즐겨 먹는 지는 잘 모르겠다). 잘 익은 토마토는 튀기면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풋토마토를 튀기기 시작한 게 전해져 내려왔다나. 여튼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민음사, 2011, 김후자 역)는 198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고, 평단에서 좋은 평도 받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소설이다. 원제는 "Fried Green Tomatoes at Whistle Stop Cafe"로 미국 앨라배마 주의 작은 마을 휘슬스톱의 한 카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1929년 휘슬스톱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작은 소식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체국 바로 옆에 이지 스레드굿과 루스 제이미슨이 카페를 개업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바로 다음 장엔 1985년 앨라배마 주 버밍햄의 한 요양원으로 배경이 옮겨진다. 중년여성 에벌린 카우치는 남편을 따라 시어머니를 만나러 매주 요양원을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니니 스레드굿이라는 생기 넘치는 노부인을 만난다. 노부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에벌린에게 말을 걸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오래 전 스레드굿 가족과 휘슬스톱 카페를 둘러싸고 벌어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제 소설은 현재의 에벌린과 니니가 만나는 이야기와 1900년대 초 휘슬스톱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잃었던 여성의 자리 되찾아주는 이야기


이 소설의 특이점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이란 점을 꼽을 수 있을까. 일단 주요 등장인물, 에벌린과 니니, 리지와 루스만 봐도 다 여성이고 500쪽이 넘는 분량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멀쩡한 남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여성이 주요 인물로 나와서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는 그저······ 딱 그 중간에 끼어 있는 기분이에요. 저에겐 여성 해방 운동이 너무 늦게 왔어요······. 결혼을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더라고요. 부인께서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네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이젠 뭔가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인생이 그냥 제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요.”


에벌린은 어린 시절부터 눈치 보며 살아왔다. 사회와 교회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좇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콤플렉스와 열등감 덩어리로 무기력한 중년이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하고, 스트레스-군것질-다이어트의 순환고리는 강박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에벌린이 니니를 만나 스레드굿 가(家)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해간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지 스레드굿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긍정하고,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에벌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그토록 중이 여기는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단지 남자가 가진 힘만을 갖고 싶었다. (···) 그리하여 나이 마흔여덟 살에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 사는 에벌린 카우치 부인은 믿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벌린이 그렇게 매혹되었던 이지 스레드굿은 누구일까? 휘슬스톱의 이지는 스레드굿 가의 막내이자 천방지축 꼬마다. 이지는 보통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유별났다. 치마나 드레스는 불편해서 입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외모 꾸미기는 뒷전이고 밤새워 낚시하거나 모험하는 걸 즐겼다. 형제나 부모가 뭐라 하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로 놀러 온 루스 제이미슨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자인 두 사람이 그냥 이어 질리는 만무하다. 후에 루스가 결혼하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자 이지는 루스를 구출해내고, 우여곡절 끝에 같이 카페를 꾸리며 살아간다.


이야기가 이러하니 페미니즘 소설이나 퀴어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민음사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페미니즘 단체인 <페미니스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소설이라고도 하고, 영화는 LGBT 작품들을 뽑아 시상하는 단체(GLAAD)에서 수여하는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지와 루스 사이에 성적인 코드는 거의 드러나진 않는다. 그저 둘 사이의 애정이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소설을 발표할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은근해서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는 연대의 이야기


그래서일까. 차별과 혐오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대목과 설정이 여럿 나온다. 에벌린은 마트에 장보러 가서는 이름 모를 청소년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는가 하면, 이지와 루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루스의 아들은 어릴 적 사고로 외팔이로 자라나는데 이지는 오히려 차별의 시선을 정면돌파 하도록 키운다.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도 이야기의 주요한 가지다. 어린 시절 스레드굿 가의 집에서 일했던 십시 부인, 온젤, 빅조지 부부는 이지, 루스와 함께 카페에서 노동하며 살아간다. 온젤과 빅조지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야기는 흑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준다. KKK단이 찾아와 흑인에게 음식을 팔지 말 것을 경고해도 이지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이지를 보면 허클베리 핀들이 모여 살았을 법한 마을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작은 음식 하나로 주고받는 따뜻한 마음


휘슬스톱 카페가 미국 대공황기가 시작된 1929년에 개업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휘슬스톱 카페는 오는 이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지와 루스는 부랑자들이 찾아오면 비굴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며 원없이 먹이고 재웠다. 기차를 몰래 얻어 타고 떠도는 부랑자들 중에는 카페에 들러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소설이 풍겨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음식'은 대공황기에나 현재에나 중요한 매개물이다. 휘슬스톱 카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에벌린과 니니도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나눈다. 둘은 만날 때마다 무언가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처음엔 초코바나 칩을 나누던 것이 에벌린이 니니를 위해 장만한 음식으로 바뀌어간다. 음식이 변해가면서 에벌린의 내면도 변해간다. 작은 과자 하나, 저렴한 풋토마토튀김 하나에도 온 마음이 담긴다. 그 음식 나누면 마음도 나눌 수 있다.


이야기의 힘


패니 플레그의 소설은 처음이고, 우리에게 알려진 책도 이게 전부지만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다. 양념처럼 소소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백미다. 예컨대 이런 이야기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자그만 호수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오리 떼가 날아와 앉아 있는데 갑자기 희한한 일이 일어났지 뭐에요.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호수가 바위처럼 꽁꽁 얼어버린 거에요. 3초쯤 걸렸을까. 그리곤 오리들이 얼음을 매단 채 날아가버렸어요. 지금 그 호수는 조지아 주 어딘가에 있을걸요." 듣기만 해도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가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충만하다. 에벌린의 마음을 치유하고 일으켜 세운 건, 휘슬스톱 마을 사람들을 연대의 끈으로 이어준 건 바로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나오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맛있을까?


분량은 만만치 않다. 구성은 액자식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을 통째로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세세해서 처음엔 읽어내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1/3 정도 읽으면 에벌린과 니니, 이지와 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속도가 붙는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재치 넘치는 이야기들은 마치 도움닫기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짙은 여운이 밀려왔다. 이런 마을이 또 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또 있을까. 고도로 현대화 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풍경일 거란 생각을 하면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 속에선 영원히 존재할 풍경일 게다. 그 이야기를 향한 마음이 이런 소설을 창작하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고, 때론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했을 것이다.


떠나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니 여러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우리는 둘 다 바로 이 휘슬스톱에서 나고 자랐으며 무수히 많은 멋진 시간들을 보내며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습니다. 이곳이 이제 예전 같지 않네요. 넓은 고속도로가 여기저기로 뚫리면서부터 버밍햄은 어디서 끝나며 휘슬스톱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조차 알 수 없어졌지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카페가 문을 닫은 뒤로 이 마을의 심장이 박동을 멈춰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처럼 작은 공간 하나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휘슬스톱 카페'


#페미니즘소설 #퀴어소설 #프라이드그린토마토 #패니플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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