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비밀 - 좋은 감독과 배우들이 만났지만>

내 멋대로 영화 보기 002

by 이필립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jpg 영화의 메인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스페인의 한 작은 마을에서 결혼식 피로연 때 소녀가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배우들일 것이다.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집에 방문하는 것이 페넬로페 크루즈(라우라)이고, 라우라의 이전 친구이자 가족들과도 관계가 깊은 와인 농장주가 하비에르 바르뎀(파코)이다. 이 대배우들이 한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어려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이 감독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었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하지만 늘 그렇듯 영화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무리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이라도 늘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는 없으니까.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라우라는 동생 아네의 결혼식을 위해 딸 이레네와 아들 디에고와 함께 남편 없이 고향집을 방문한다. 와인농장주 파코는 오랜 친구이자 가족들과도 인연이 깊은 사이다. 결혼식 날 늦은 밤까지 피로연이 진행되는 도중 마을에 갑자기 정전 사태가 벌어지고, 그 사이 2층에서 잠을 자던 라우라의 딸 이레네가 사라진다. 실종인지 장난인지 불명확한 상황. 가족들이 비 오는 밤거리를 뛰어다니며 딸을 찾는다. 그 뒤 납치범의 협박 문자가 오면서 납치사건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누구나 아는 비밀 두 주연 배우.jpg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배우 (출처: 다음 영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띠고 있다. 실제로 정전이 된 마을에서 사라진 딸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관객들의 집중도가 가장 높아진 시점일 것이다. 이 뒤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진행은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목격자를 탐문하고, 딸이 납치되었을 동선을 생각하고(여러 사람이 파티를 하는 집의 2층에서 납치되었기 때문에), 경찰에게 신고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납치 범죄는 대부분 시간과의 싸움이다. 영화는 그 시간제한에 쫓겨 촉박하게 달려 나갈 수 있었다. 활용할 수 있는 단서들도 많았다. 작은 마을에서 잠든 10대 여자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는 것도, 한 방에서 자던 어린 남자애는 데려가지 않았다는 것도 충분히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힌트가 될 수 있었다. 헌데 영화는 활용할 수 있는 이 많은 단서들을 포기하고, 인물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데 공을 들인다. 납치 사건에서 파생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전개가 아니라, 인물들의 혼란과 좌절, 그리고 이들에게 감춰져있던 새로운 관계도를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마도 감독의 선택이었겠지만, 이 지점이 아쉽다. 그때부터 영화의 템포와 긴장감은 현격히 줄어든다. 시종일관 무겁고 느리며, 납치 문제라는 다급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인물들의 감정 대립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딸이 납치되기 전까지 영화가 진행되는 흐름이나, 정전이 된 마을에서 딸을 찾는 장면들이 흡입력 있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영화가 마지막까지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더더욱 안타깝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내가 언급한 장면까지 아무 불만 없이 따라왔을 것이다. 기가 막힌 연출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한 번 보면 계속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도 목격했던 감독의 능력이었다. 차라리 이레네가 실종되면서 생긴 긴장감을 계속 끌고 갔다면 어땠을까? 번호도 모르고, 언제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 납치범의 문자를 기다리기보다는 작은 시골 마을 여기저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밀면서 누가, 왜, 어떻게 이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진지하게 따라갔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농장 일을 위해 외부에서 들어온 일꾼들이나 드론 촬영을 하던 10대 아이들을 용의자 선상에 올리면서, 이 작품이 어느 영역까지 건드릴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스펜스와 함께 사람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란 흥미로운 지점을 다룰 수도 있었으나, 더 나아가지 않은 채 슬쩍 손만 대고 사라진다. 어쩌면 영화는 좀 더 그런 곁가지들을 만들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영화의 동력을 잃지 않고 범인을 찾아가면서도, 인물들의 감춰진 이면이나 영화의 제목처럼 ‘누구나 알지만 비밀’이 되었던 것들에 대해 폭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 1.jpg 딸의 실종 장면까지는 만점을 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럽다 (출처: 다음 영화)


지금까지 언급한 아쉬움이 연출의 선택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결말 장면은 이야기 자체에 대한 불만을 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마무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범인의 정체와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방식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납치 사건이 발생했으니 관객들은 당연히 누가 범인인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범인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떻게 납치에 성공했을지도 의심스럽다. 뭐랄까, 범인은 만들어야겠고, 그냥 적당히 누구 하나 골라낸 느낌이랄까?



사실 이 영화는 범인을 드러내는 것 말고도 다른 선택지를 갖고 있었다. (영화를 본 이들은 교회의 종탑 장면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게다가 그 가능성을 영화 곳곳에서 시종일관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굳이 범인을 선택하여 드러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게다가 납치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과정도 전적으로 파코에게만 의지하는데, 그 과정도, 그리고 사건이 해결된 이후도 썩 탐탁지 않다.



아무래도 영화가 납치 사건과 해결보다는, 제목에서 드러난 ‘비밀’에 좀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 탓에 사건의 해결이야 어찌되었건, 비밀이 드러나면서 생긴 균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은 보통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영화를 따라가게 했던 기본 서사의 줄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시작한 서사는 개연성 있게,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아쉽다. 영화의 중반까지 굉장히 호의적으로 봤던지라 더더욱 그렇다. 서사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있었더라면 충분히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좋은 배우들과 감독이 모였는데 그에 비해서는 중후반의 진행이 불만족스럽다.


만약 누군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것 같다. 그리고 고민 끝에 ‘굳이’라고 한마디를 덧붙일 것 같다. 물론 두 배우의 팬이라면, 혹은 감독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보는 것도 무방하다.



1. 감독과 배우의 팬이라면 추천.


2. 이야기의 개연성을 중시한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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