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 열아홉 메리 셸리가 창조한 세계>

서평, 당신의 취향이 아니라면 미아하지만 001

by 이필립


프랑켄슈타인 표지.jpg 문학동네 세계 문학전집 94 표지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인간의 과학이 창조해낸 괴물, 관자놀이에 박힌 나사못, 여러 신체 부위를 이어 붙인 거대한 몸집, 그리고 자신의 창조주에게 도전했던 반항적인 태도. 그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원작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굳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두 가지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하나는, 리베카 솔닛이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듯이, 소설의 이야기가 북극을 배경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내 기억 속 프랑켄슈타인은 미치광이 과학자의 기괴한 실험이란 인상이 짙었기 때문에 소설에 북극이 등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헌데 소설은 북극에서 기괴한 생명체를 목격했다는 편지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명확한 내 기억과는 다르게, 원작은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하나는, 작품의 내용과는 무관한 사실인데, 이 소설을 쓴 작가 메리 셸리가 당시 열아홉 살이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첫 아이를 사산하였다는 사실과, 어느 날 꾸었던 기괴한 꿈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시인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 박사와 함께 지루한 밤을 달래줄 괴담을 하나씩 창작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점 등이 이 소설의 뒷이야기로 떠돌지만, 정작 내 흥미를 끌었던 건 열아홉이란 작가의 어린 나이였다. 한 작가가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 캐릭터를 창조했는데, 그게 10대의 어린 나이였다. 문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실제로 그녀가 쓴 소설은 어떨까?


원작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제네바 출신의 명문가 아들인 프랑켄슈타인은 어린 나이에 새로운 지식 습득에 심취한 나머지 연금술과 자연철학(과학)을 닥치는 대로 습득한다. 성인이 되어 잉골슈타트에서 유학하면서 지식은 더욱 깊어지고, 자신이 아는 바를 이용해 괴물을 창조하게 된다. 하지만 덩치가 크고 흉측하게 생긴 자신의 창조물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망을 치게 되고, 그 사이 괴물은 혼자 세상을 떠돈다. 자신의 생김새 때문에 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괴물은 자신과 똑같은 생명체를 하나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창조주였던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자신을 만든 것처럼 여성 생명체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며 거절을 하고 둘 사이의 갈등이 커져간다.


원작을 읽고 나서 나는 몇 가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닌 주인공 인간의 이름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창조물에 똑같은 이름을 물려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아는 괴생명체의 이름은 무엇일까? 원작에서는 이름이 없다. 그냥 괴물이라고만 묘사된다.

그리고 괴물의 외형 또한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시체를 이어 붙인 상처의 흔적이나 관자놀이의 나사못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B급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여러 작품에서 재탄생되면서 생긴 것이다. 원작에서 괴물은 끔직하다는 표현 정도로만 묘사된다. 마주친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거나,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덩치가 크다 정도로 서술될 뿐,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은 없다.

마지막으로 소설에는 괴물을 만드는 고정이나 그것을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다. 초기에 주인공이 연금술과 자연철학(과학)을 습득하는 과정에 대해 서술하기는 하나, 어떤 이론을 이용했고 어떠한 점에 착안하였는지 등 힌트가 될 만한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에서 본 장면일 테지만, 번갯불을 이용해 생명을 불어넣거나, 괴물의 신부가 등장하는 일도 없다.


원작은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생명체가 인간 사회에 섞여들지 못해 외롭고 분노하는 과정과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이 사람을 살해하고 누명도 씌우는 등 범죄를 저지르자 두려워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괴물은 자신이 세상에 섞여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창조주인 주인공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아담에게 이브가 있었듯, 자신에게도 여성 생명체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이러한 이야기 구조에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책임과 양심의 문제, 성경과 신화를 비유한 이야기 구조, 여기에 작가의 개인적 역사가 겹쳐지면서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떠들 것은 많다. 소설이 완성되었던 19세기 유럽은 한창 과학이란 새로운 지식이 화수분처럼 샘솟던 시기다. 인간이 과학으로 창조주의 위치를 대신했다는 건 신앙과 신에 기댔던 중세의 시기를 떠난다는 시대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평론가들의 몫이고, 일반 독자들에게는 순수한 재미,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원작은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전혀 흥미롭지 못하다. 메리 셸리가 풀어냈던 사유들은 눈여겨볼 만하나,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다. 일단 인간이 창조한 괴물이 여느 지식인 못지않은 고차원적 생각과 도덕적 갈등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차라리 짐승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되었다면 오히려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미움과 박해를 받으면서 외로움과 분노를 느꼈고,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또 원하게 되었다면? 글쎄,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을까? 현대의 관점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원작이 한밤중에 나눌 무서운 이야기를 위해 쓰였음에도 전혀 무섭거나 스릴 넘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소설의 대부분이 사유적 문장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몰입이 잘 안 된다. 북극에서 괴생명체의 발견하여 그것을 편지로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좋았으나, 그 뒤의 긴장감을 충분히 끌어가지 못한다. 물론 이 모든 지적은 현대의 관점이다. 다양한 이야기의 구조가 탄생하고 발전한 현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흥미가 덜하다는 뜻이다.


10대 소녀가 썼다는 파격적인 배경에 이끌려 읽었으나, 결과적으로 소설에서 기대했던 바는 충족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한 작품이 다른 창작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도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가 낳았으나 수많은 창작자의 상상력을 거쳐 100년이 넘는 시간 뒤에야 완성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길고 지난했을지, 혹은 어떠한 점이 후대에 영향을 줬을지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볼 법한 작품이다. 분량도 적고, 클래식한 작품 구조와 비유를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 갖는 이미지만큼이나 파격적인 상상력과 묘사, 공포와 스릴로 점철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아마도 실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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