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Jul 08. 2024

의외로 트렌디했던 홈쇼핑 방송들


홈쇼핑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대표적인 (부정적인) 이미지는 트렌드에 뒤떨어짐,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방송, 중년 주부들만 보는 방송 같은 이미지 일 것입니다. 


홈쇼핑 회사들이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홈쇼핑 방송은 젊은 감각 그리고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홈쇼핑 방송이 트렌디했다고 말을 하면 코웃음을 치게 될까요? 생각보다 홈쇼핑에서 과감한 시도들이 많았습니다.


1. 3D 스마트폰 판매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많은 회사에서 스마트폰을 생각하고 차별화를 외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모 회사에서 과감하게 3D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고도 3D 디스플레이로 스마트폰을 쓸 수 있었죠. 당시 스마트폰만 해도 엄청난 기술이었고 그런 기술과 어플의 홍수 속에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생활환경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던 시기여서 새로운 기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를 틈타 3D 스마트폰이 출시가 되었고 놀랍게도 홈쇼핑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당시 늦은 시간에 방송을 했었고 너무나  새로운 시도였기에 연차가 낮았던 제가 담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송 회의 때 느꼈던 그 신기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바타 영화만 해도 우와 하고 봤던 시기였기 때문에 안경도 없이 3D 디스플레이가 구현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정말 갖고 싶었습니다. 무조건 대박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방송 준비도 열심히 했고 카메라 상으로도 3D가 충분히 보일 수 있도록 세팅을 했습니다. 그렇게 방송이 시작되고 우리의 3D 스마트폰이 웅장한 자태와 기술을 뽐내기 시작했습니다. 쇼호스트의 목소리도 커지고 스튜디오에서도 놀라운 기술이라며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시청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다들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정작 구매는 하지 않았습니다. 3D 화면을 보여달라는 요청은 많았지만 막상 그것을 보고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스마트폰에 굳이 3D를? 하는 생각은 듭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지만요. 결국 목표 매출의 50%도 하지 못하고 방송 후 리뷰 회의 분위기는 침울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선보였던 3D 스마트폰은 그날 홈쇼핑에서 잠들었습니다.


2. 아프리카 여행


해외여행이 일상인 지금도 아프리카 여행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선뜻 시도하기 어렸습니다. 그런데 무려 15년 전에 홈쇼핑에서 아프리카 여행 상품 방송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아프리카도 많이 알려지고 영상도 많이 접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는 꽤나 낯선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파리 투어로 초원을 달리고 야생고기 BBQ를 제공하는 파격적인 일정의 여행 상품을 홈쇼핑을 통해 선보인 것입니다. 지금은 아프리카 직항편도 존재하지만 당시에는 방콕을 경유해서 꼬박 하루를 가야 하는 긴 일정이었습니다. 상품을 준비한 투어업체는 그런 문제를 인지했는지 방콕에서 전신마사지를 제공하는 등 고단한 몸을 풀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정말 어렵게 수소문해서 4성급 이상의 호텔로만 구성하고 면세 상품권 10만 원 등도 제공하는 등 야심 찬 의지를 드러냈지만 방송 중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금도 간혹 홈쇼핑에 아프리카 여행 상품 제안이 들어오지만 업계 모두가 이때의 충격(?)으로 쉽게 편성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숏폼 커머스의 원조(?)


2010년대 초반 홈쇼핑 회사들 중 일부가 모바일 진출을 천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화로 주문하는 방식이 흔했고 매출의 대부분이 TV 방송에서 나오던 시기라 아주 용기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앱 주문 할인 등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중 특이했던 시도가 모바일 숏폼 영상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 그것도 홈쇼핑에서 이상한 복장과 안경을 낀 출연진들이 나와서 10분 동안 온갖 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는 모바일 방송이 있었다니 정말 세상을 너무 앞서 나간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5~10분 분량의 모바일 방송이 진행되었고 출연료가 필요한 쇼호스트 대신 신입 PD들이 직접 출연을 해서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지금의 라이브커머스의 시초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회사에서는 꽤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생각했지만 너무나 적은 매출 금액과 PD로서 자괴감이 든다는 직원들의 불만에 소리소문 없이 없어진 것도 특징입니다.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홈쇼핑에서 시도한 과감한 방송들이 있었고 대부분 실패로 끝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안착한 상품과 방송도 분명 존재합니다. 렌털 상품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오늘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홈쇼핑의 작은 시도 하나가 업계의 생존을 책임지는 날갯짓이 되었으면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