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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ug 05. 2024

4화 초짜 학생이 오디션 몇 번에 영화배우가 되다

초등학교 때 누구나 꿈꾸는 과학자 정도를 제외하고는 어릴 때부터 나의 꿈은 PD였다.

그래서 대학 입학 후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나름 시험과 면접을 통해 학교 방송국의 일원이 되었다.

학교 방송국이라고 해봐야 지도 교수 한 명에 몇몇 장비를 두고 학교 촬영일을 지원하는 일이 전부였지만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나름의 축제도 개최하는 일도 했다.

물론 그런 콘텐츠를 만들 때는 말이 PD지 혼자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딱 하나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던 것이 배우였다. 배우 일을 하는 사람들과 배우를 구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에서 얼마간의 출연료를 주고 같이 작업을 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기획은 내가 했고 모든 그림은 내 머릿속에 있는데 아마추어 감독으로서 배우에게 디렉팅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배우들도 돈을 받는 배우이기는 하나 경험이 충분해서 초보 감독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그 정도 배우를 섭외하기에는 호주머니가 너무 가벼웠다.


"아.. 이 씬이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시면.. 대본이 좀 명확하지 않아서요"

"눈을 떴는데 내 얼굴이 다르면 당황스럽잖아요. 그런 기분을 좀 표현하는 씬이에요"

"아.. 대본에 놀란 듯이라고 되어있는데.. 혹시 놀라는 것과 당황하는 것이 좀 달랐으면 한다는 말씀이실까요?"


어떤 날은 배우와 연기에 대해 입씨름하는 시간이 촬영 시간보다 길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위대한 감독들이 꼭 스토리나 연출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 연기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들이 있다는 것도 이때 깨달았다.

'시나리오도 내가 쓰고 내가 연출하는데 내가 가장 잘 이해하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감독들이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하는 거구나'


그렇게 방송국 축제를 준비하던 중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내가 맡은 콘텐츠 편집에 여념이 없었는데 방송국 선배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큰일 났네. 배우 하나가 잠수를 탔어. 두 시간 뒤에 촬영 들어가고 다른 배우들이랑 스태프들은 다 와있는데"

"요즘 왜 이렇게 잠수 타는 배우들이 많아요? 아무리 아마추어 영상이라지만"

"....."

"....."

"....."

"..... 왜 절 쳐다봐요??"

"진짜 미안하다. 한 번만 출연해줘라. 대사 최대한 줄일게. 지금 도저히 섭외가 안된다"


그렇게 거의 끌려가듯이 촬영현장으로 간 나는 얼떨결에 배우 데뷔를 하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술을 따라주고 힘이 되는 몇 마디 해주는 게 끝인 역할인지라 촬영은 매우 무난하게 끝났다.


"고맙다!  이 정도면 다음에 또 출연해도 되겠는데? 출연료도 아낄 수 있고"


배우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디렉팅에 대한 고민을 하던 나도 뭔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슬금슬금 연기에 욕심이 나기 시작한 것이.


다음 방송국 축제 때 나는 나서서 나를 배우로 써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작은 역할이어도 좋으니 상관없다고 했다. 출연료도 아끼고 디렉팅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대부분 흔쾌히 수락을 했다.


그 축제에 나는 실연남, 북한공작원, 살인마, 친구 2 등등으로 열연했고(?) 축제 리뷰 회의 때 겹치기 출연 논란이 있었을 만큼 다양한 콘텐츠에 등장했다.


그렇게 초짜 배우로 폭풍 같은 경험을 하고 재미를 느끼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교내 영화 동아리 섭외 담당입니다. 얼마 전에 방송국 축제 때 연기하시는 걸 봤는데요. 이번 저희 단편 영화에 출연 제의를 드리고 싶어서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섭외를 한다고??

그렇게 영광스럽게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연료를 받고 연기를 하게 되었다.


일이 일을 낳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교내 동아리의 영상들에 출연을 하니 타 대학의 동아리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렇게 출연을 하기 시작하니 공중파 콘텐츠 아카데미의 실습 영상 프로젝트에서도 연락이 왔다.

 

어떨 때는 한 주 내내 촬영 스케줄이 있었고 학업을 병행해야 했기에 고사하는 섭외도 생겨났다. 이때 또 갑자기 슈퍼맨의 힘이 불쑥 나타났다.


"어쩌면 이 길이 나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


PD를 꿈꿔왔지만 카메라 앞에서 너무 즐거운 나날들이 계속되었기에 나는 이런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있지는 않았지만 음대 심화 과정으로 연기 강의가 있었다. 나는 대뜸 수강 신청을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무대에서 몸을 푸는 학생, 자리에서 목을 푸는 학생 등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지 않은 풍경들이 펼쳐졌고 외로이 앉아 나의 돌발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신방과 학생이 있네요? 누구죠?"


출석을 부르는 순간부터 나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는데 저도 연기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두 시간짜리 수업의 한 시간은 늘 몸을 푸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앞 구르기 뒷구르기 물구나무서기 등은 물론이고 원숭이 흉내내기 같은 정말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한 시간은 유명 연극이나 영화의 대사들을 따라 하고 교수가 피드백을 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아무런 기초 없이 연기에 뛰어든 나에게는 정말 피와 살이 되는 강의였다.


그렇게 조금씩 실력이 늘어간다는 착각이 들자 좀 더 큰 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지르는 게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나는 분수에도 맞지 않는 오디션이라는 것을 마구잡이로 신청하기 시작했다.


"시작해 보세요"

"내가 먼저 시작할 테니까 너는 그냥 잘 보고 따라 하기만 하면 돼. 이걸 이렇게.."

"네 수고하셨습니다. 나가 보세요"

"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혼자 대사를 하고 어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마디 하다가 쫓겨나는 일이 대다수였다. 역시 아무나 배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또다시 오디션에 참가한 어느 날. 웬일로 준비해 온 연기와 즉석 연기까지 할 기회를 받고 나름 혼신의 연기를 한 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방금 오디션장에서 만났던 감독입니다. 잠깐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됐다!! 이건 감독이 도저히 놓치기 싫은 배우를 잡는 그림이 아닌가??!!

부푼 가슴을 품고 감독이 보자고 하는 카페로 갔다.


"연기 전공을 안 하셨죠?"

"네.. 그냥 이래저래 해보고 있습니다"

"큰 영화에 나오기에는 솔직히 좀 많이 부족해요. 오늘 오디션 본 배역에도 부적합합니다"


그럼 왜 보자고 한 거지... 확인 사살인가.


"대신 제가 따로 기획하고 있는 영화에 왠지 이미지가 딱이어서 그런데 출연하실 생각이 있을까요?

"어떤.. 영화인가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좀 내용이 강한 영화가 될 겁니다. 그리고 제안드릴 배역은 게이 역할이고요"


일반적인 연기를 해도 따라갈까 말까 한데 게이 역할이라니.. 순간 감독에 대한 신뢰부터 이게 혹시 그 유명한 사기는 아닐까 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제안을 해주는 게 어딘가. 나는 아무런 기반이 없는 초짜 배우인데.


"네 하겠습니다"

"남양주에 세트장이 있고 3달 정도 촬영을 할 거예요. 매일 오실 필요는 없고 씬 찍을 때마다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덜컥 캐스팅이 되고 며칠 뒤 대본을 받았다. 감독의 개인 욕심이 많이 들어갔는지 정말 수위가 높았다. 라이트한 대중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도 있을만한 내용들이었다. 


일단 긍정적인 건 분량이 꽤 있다는 것과 내가 나오는 씬들이 영화의 핵심이자 강렬한 장면들이라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건 비슷한 배역이 있는 영화들을 보고 또 보는 것. 그리고 연습 또 연습이었다.


절친들은 내가 집에서 이상한 영화를 보고 이상한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며 갑자기 우리 집 방문을 꺼려했다. 가끔 내가 터치를 하면 놀라며 물러서기도 했다. 이런 놈들이 친구라니 울분을 표하면 그제야 응원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나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대형 스케일은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도 너무 많고 조명은 눈이 멀 정도로 밝았다. 다행히 촬영은 착착 진행이 되었고 걱정과 달리 순조롭다고 생각했는데 꼭 이럴 때 일이 터진다.


"한 장면을 꼭 추가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이죠?"

"흐름상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들어가야 맞을 것 같아요"

"아......"


나름 스크린 데뷔작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처음으로 못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게... 저는 해본 적도 없고.. 또 노출도 신경 쓰이고.."

"노출은 막을 거고 연기만 잘해주면 되니까 한번 해봅시다"

"여성 스태프분들도 많은데 제가 벗으면 그게 좀..."


한 시간가량 감독과 논쟁이 이어졌고 결국 장면을 찍되 최대한 짧게 찍고 촬영장에 감독만 남고 스태프들은 다 빠지는 걸로 협의가 되었다.

결국 그 장면은 감독이 박수를 칠 만큼 잘 나왔고 나는 한동안 멍하게 세트장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일부 후시 녹음까지 마친 후 나는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1년 넘게 아무 소식이 없어서 창고에 처박혀있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감독의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영화가 잘 나와서 해외 영화제들에 출품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특히 게이 역할 배우가 강렬했다는 평도 많았고요. 그래서 다행히 국내 상영 결정이 되었는데 곧 무대 인사가 있어요"


해외 영화제는 뭐고 무대 인사는 또 뭐지?? 감독이 알려준 영화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니 정말 국내 영화관들에 떡하니 노출이 되고 있었다. 


감독이 알려준 날짜에 강남에 있는 영화관으로 가서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 몇몇 배우와 함께 무대 인사를 진행했다. 몇몇 관객들이 나에게 와서 대화도 나눴다. 개인 SNS로 연락도 많이 받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 학생이 학교 축제부터 시작해서 상업영화 무대인사까지 오르다니. 아마 내 인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슈퍼맨의 힘은 여전히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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