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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ug 04. 2024

3화 명문대 수석도 별거는 아니구나

2년 간 공부에 올인했던 나에게 대학 생활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쉽게 친해지는 선배와 동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술자리, 축제, 동아리, 대학 대항전 등은 내가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쉴 새 없이 몰아쳤고 나를 통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수업은 뒷전이 되었다. 수업에 들어가서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수업이 끝나면 또 뭘하고 놀지 고민을 했다. 놀다가 자다가 수업을 빠진 경우는 셀 수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즐기며(?) 처음 치른 통계학 수업의 첫 쪽지 시험.

나는 당당하게 꼴찌를 기록했다. 석차 가장 마지막에 있는 내 이름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부산 한 동네에서 나름 공부 좀 한다고 했지만 전국에서 온 학생들과 경쟁하니 내 밑천이 바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노력을 한 것도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잠시 부끄러웠지만 이어지는 술자리는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활을 이어갔고 2년 내내 2점대 초중반의 학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내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학사경고를 받고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엉망인 학점을 뒤로하고 군대로 떠났다. 군대를 전역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첫날 나는 하루 종일 컴컴한 자취방에 앉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 것인지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럴 때 그는 꼭 나타난다.


'이제 학점 좀 따러 가볼까?'


슈퍼맨의 힘이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2년 간 망한 학점을 2년간 메꾸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내겐 특별한 힘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싶었다.


신규 수강과 재수강을 반반 섞은 스케줄로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딴생각으로 가득했던 강의시간을 빼곡한 손글씨로 채웠다. 강의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꼭 그 노트를 다시 보곤 했다. 물론 저녁이면 사람들을 만나 밥이며 술로 시간을 보냈지만 그 목적과 방향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선배 통계학 A+ 받았죠?"

"응 근데 왜?"

"저 재수강했는데 좀 알려줘요. 저 수포자여서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문과가 무슨 통계학이 필수 과목인지 참"

"그래?? 알겠어 뭐 어렵진 않지. 근데 뭐 해줄 건데?"

"이거 제가 사잖아요"


이런 나름의 노력 끝에 첫 학기 3점 후반대의 학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재기(?)를 이뤄냈다.

끝나가는 방학을 아쉬워하며 침대에 누웠던 어느 날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명문대에서도 1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이렇게 마음을 먹자 슈퍼맨의 힘은 더 강하게 느껴졌다.

지난 학기 성적이 우수했다는 이유로 나는 한 과목을 더 수강할 수 있는 혜택(?)을 얻었다.

남들보다 과도한 스케줄로 불리할 수도 있었고 이것마저 학점이 좋다면 평균 학점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나는 한방을 노리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많은 강의와 스케줄 속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했다.


교수의 허락을 받아 수업을 녹음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다시 들으며 강의 내용을 음미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체크를 해두었다가 강의 시간에 교수에게 따로 물어보고는 했다.

전공 심화과정이다 보니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내가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나의 이런 모습이 사소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여느 날처럼 강의 내용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를 교수와 하고 돌아섰다.


"언제 졸업하지?"

"다다음학기가 마지막입니다"

"졸업 후 나랑 좀 더 연구해 볼 생각은 없나?"

"없습니다"


하마터면 교수의 노예로(?) 잡혀갈 뻔했다!

그렇게 바쁘지만 노력했던 결과는 어땠을까? 슈퍼맨의 힘은 통했을까?

성적 우수생.

한마디로 차석이라는 뜻이었다. 아까웠다! 조금만 더 잘할걸!

반액 장학금이라는 혜택이 주어졌지만 이렇게 좋은 성적은 처음 받아봐서 장학금을 신청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주어지는 건 줄 알았다. 그렇게 목표도 달성 못하고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지만 다행히 아직 한 발이 남아 있었다.


졸업 학기를 뺀 사실상 마지막 학기 내 목표는 오직 수석이었다.

역시나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강의를 수강하고 더 전의를 불태웠다.

각 강의마다 특별한 무기를 찾기로 했다.


한 강의는 물론 시험도 있었지만 발표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교수의 판단보다는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순위가 갈린다는 소문이 파다한 강의였다.

발표를 들은 학생들을 뒤집어지게 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발표에 활용하는 영상에 조교를 출연시키자는 것이었다.

강의에 들어오던 조교는 무뚝뚝하지는 않았지만 유난히 학생들과 거리를 두는 타입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그런 조교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수군대기도 했다.

내 아이디어에 팀원들이 재미있겠다며 섭외 역시 나에게 맡겼다.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조교님 안녕하세요? 저 수업  듣는 학생입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혹시 이번 발표에 쓸 저희 영상에 출연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아닙니다.. 제가 카메라 앞에 서본 적도 없고 조교인데 좀.."

" 00이라는 학생이 상대역이고요. 연애 상담 관련 콘텐츠입니다"


여기서 00은 수업을 같이 듣는 여자 팀원으로 나는 일찌감치 조교가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출석을 부를 때 혹은 공지사항을 이야기할 때 조교의 표정과 시선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 네 그렇군요.."

"그리고 촬영 후에 다 같이 뒤풀이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저희가 출연료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술값은 면제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조교의 흔들리는 마음을 틈타 냉큼 승낙을 얻어내고 다음 날 바로 촬영도 진행해 버렸다.


발표 당일.

발표를 진행하던 조장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러면 발표를 좀 더 이해시킬 수 있는 영상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특별한 분이 출연하시니 집중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밤새워 만든 역작이 재생되었다.

조교의 모습이 영상에 나타나자마자 강의실에 환호성이 터졌다.

조교의 어색한 연기가 시작되자 다들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심각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교수마저 자리에 주저앉아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것은 곧 성적으로 이어졌다.


또 러시아 영화 강의를 들으면서 시험이 유명 감독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에세이로 대체된다는 공지사항을 접하고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보는 건 누구나 할 것이다. 그의 배경이나 인생사도 인터넷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이 있는 에세이를 위해서는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했다.

나는 러시아 영화 협회와 영화제 관계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내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러시아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대한 러시아 현지 평가를 듣고 싶고 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에피소드 등이 있는지 문의했다. 일주일 넘게 회신이 없었고 포기할 즈음 메일 한통을 받았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망명한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던 자칭 수제자라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를 통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고 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부 작품에서 그런 것들이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사진까지 첨부하여 정성스럽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타르코프스키 감독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어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누구보다 풍성하게 에세이를 쓸 수 있었고 해당 과목에서 좋은 성적은 받은 것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 강의에서는 아주 엉뚱한 미션이 내려왔다.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인터뷰를 따오는 것이었다. 일개 대학생들이 알고 있는 인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국가대표 벤치 축구선수, 프랜차이즈 식당 사장님, 구의원 등 별별 인물들이 후보로 떠올랐다. 우리 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누구 없나 머리를 싸매다가 한계에 봉착했다. 그때 팀원 한 명이 아이디어를 냈다. 방송국 사장님 인터뷰를 따자고. 우리의 전공과도 밀접한 분이고 당시만 해도 TV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했기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다들 홈페이지 대표 이메일로 연락을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방법으로는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직접 찾아가자"

"어디를?"

"방송국에서는 막을 테니까 집에 찾아가자"

"경찰서 가는 거 아니야???"


모두의 반대에도 나는 모 방송국 사장님의 집주소를 찾아냈다.


"언제 출근할지 모르니까 나는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에 집 앞으로 갈게"

"그렇게 해서 만날 수 있을까? 학생들이 갑자기 왔다고 화내면 어떻게 하지?"

"한번 해보는 거지 뭐. 대신 플랜 B는 생각해 두자"


불안했던 절반의 팀원들은 남아서 후보를 찾기로 했고 나와 2명의 팀원이 당당하게 나섰다.

다음날 새벽 5시. 우리는 하염없이 아파트 라인 입구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눈이 감기고 이게 뭔 고생인가 싶었지만 왠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라인 앞에 수상한 고급차가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TV에서만 보던 사장님이 나왔다.

나는 무작정 뛰어가서 실례를 무릅쓰고 말했다.


"사장님 저희는 신방과 학생으로 사회의 유명인들의 목소리를 담는 과제를 하고 있습니다. 공중파 사장님의 목소리를 꼭 담고 싶습니다. 10분만 부탁드립니다!!"


무슨 기습인가 싶어서 놀랬던 사장님은 차분히 말했다.


"아 지금은 곤란해요. 다음에"


차에 타는 사장님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창문이 내려갔다.


"연락처 있어요?"


놀랍게도 사장님은 나의 연락처를 받아갔고 2시간 뒤 비서를 통해서도 아닌 직접 전화를 주셨다.


"아까는 너무 놀라서 미안해요. 저도 언론과 방송의 미래인 학생들은 보고 싶습니다. 괜찮으면 내일 사장실로 오세요"


하루아침에 공중파 사장님의 초대를 받게 된 것이다.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팀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우리는 거짓말 같이 방송국의 사장실에  앉아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질문, 사장님이 생각하는 언론과 방송 등 하고 싶었던 말들을 나누며 한 시간이 넘게 인터뷰를 했고 소정의 선물과 기념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인터뷰는 네임벨류는 물론 강의의 목적면에서도 최고였다.


4학년 1학기. 나는 전 과목 A학점을 받았다. 성적표 옆에는 내가 그토록 그리던 말이 붙어있었다.

성적 최우수.

수석이라는 그 꿈을 정말로 이루어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전액 장학금을 받아냈다.

총장님과의 식사 자리는 보너스였다.  



나는 확신했다. 나에게는 특별한 힘이 진짜 있고 마음먹으면 세계정복도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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