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다음날 재료 사려고 장사를 하다니

by 지크

명동 본점에서의 드라마 같은 완판 행진이 끝난 직후, 우리는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제 꽃길만 남았다고 믿었다. 브랜드로서 입지도 다졌고, 회장님 방문(추정)이라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까지 챙겼으니, 이제 우아하게 물량 조절하며 '경영자 놀이'나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착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정한 지옥은 불길이 아니라,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와 함께 찾아왔다.


"오늘 왜 물량이 3천 개밖에 없어? 5천 개는 나와야 하는데?"


생산 담당의 풀 죽은 목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되물었다. 5천 개가 나와도 백화점마다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3천 개라니?


"피스타치오가 없다... 마시멜로도 더 공급 안 되면 이틀이면 공장 멈춰"


대한민국이 두쫀쿠에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이 유행에 탑승하겠다며 전국 방방곡곡의 디저트 가게들이 뛰어든 탓이었다. 평범하게 수입해서 쓰던 우리 재료들이 하루아침에 전 국민이 찾아 헤매는 희귀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대 두쫀쿠 시대', 아니 '피스타치오 전쟁'의 서막이었다.


가장 먼저 동난 것은 두쫀쿠의 심장, 피스타치오 페이스트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화 한 통이면 다음 날 문 앞에 쌓여있던 녀석들이, 부르는 게 값인 귀하신 몸이 되었다. 거래처 사장님의 목소리 톤부터 180도 달라졌다.


"사장님, 요즘 물건 없는 거 아시죠? 이거 지금 현금 싸 들고 와서 대기하는 사람만 열 명이에요. 기존 거래처니까 제가 특별히 한 박스 빼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전화를 끊고 나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내 돈 주고 내가 물건 사는데 왜 굽신거려야 하는가. 하지만 자존심 따위 세울 때가 아니었다.


피스타치오뿐만이 아니었다. 바삭한 식감을 책임지는 카다이프면은 씨가 말랐고, 심지어 흔하디흔한 마시멜로까지 품귀 현상을 빚었다. 두쫀쿠의 삼위일체 재료가 모조리 증발해 버린 것이다.


가격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널뛰었다. 주식 차트도 이렇게 오르면 작전주 소리를 들을 텐데, 원재료 가격이 일주일 만에 정확히 두 배가 뛰었다. 지난주에 100만 원이면 샀던 분량이 오늘은 200만 원. 그것도 없어서 못 산다. 웃돈을 얹어주겠다고 사정사정해야 겨우 뒷구멍으로 몇 박스를 구하는, 암시장 거래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개중에는 카다이프 대신 소면을 튀겨 넣고, 피스타치오 대신 인공색소를 쓰는 등 기상천외한 탈출구를 모색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우리는 차마 그런 우회로를 택하지 못 했다. 그저 빨리 원재료가 수급되길 기도하며 어떻게든 있는 재료를 쥐어짜 버틸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이한 경제 구조가 탄생했다. 두쫀쿠는 역대급으로 잘 팔린다. 매일 완판에 줄을 선다. 통장에 돈이 꽂히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 그 돈이 통장을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 번 돈을 몽땅 털어 내일 쓸 비싼 재료를 사는 데 쏟아부어야 하니까.


매출은 수직 상승인데 수익률은 곤두박질치는 아이러니. 우리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 두쫀쿠를 파는 것인가, 아니면 재료상 사장님들 배 불려주기 위해 파는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두쫀쿠를 만들 게 아니라 빨리 피스타치오나 카다이프 수입상을 할 걸 그랬어"


"미국 금광 터졌을 때 돈 번 건 청바지랑 곡괭이 판 사람들이라더니, 그 말이 진짜였네"


알 수 없는 이 열풍은 하다못해 포장재의 품절까지 불러왔다.


"케이스랑 컵 유산지도 품절이라고? 무슨 종이 쪼가리까지 대란이야?"


"그나마 아침에 싹 긁어모아서 9만 개 확보했는데, 이거 일주일이면 다 써"


이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백화점 매니저들은 매일같이 독촉 전화를 걸어온다.


"대표님, 물량 좀 더 못 늘려요? 지금 고객 클레임 들어오고 난리 났어요. 다른 지점 거라도 좀 빼서 보내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매장 뒤편에 피스타치오 나무라도 심고 싶은 심정이다. 재료가 없어서 라인이 멈출 판인데 물량을 더 내놓으라니.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잘돼서 망한다'는 말이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그 교과서의 예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난리통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뿌듯하면서도, 당장 내일 반죽할 재료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화려한 백조가 물밑에서는 미친 듯이 발버둥 치듯, 오늘도 우리는 우아한 두쫀쿠를 위해 치열하게 피스타치오를 찾아 헤맨다.


제발 유행이 식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발 재료값 좀 떨어지게 적당치 찾아 싶은, 참으로 이중적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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