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이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곳

by 지크

명동 본점 이야기 전 한번 숨을 고르기 위해, 그리고 꼭 쓰고 싶은 마음에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작은 회사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파트타이머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생산이나 매장 판매 등에는 그들이 필수적인데, 회사에서 채용을 맡고 있는 나는 이들이 처음으로 소통하는 사람이기에 심적으로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이번에 각 지점 매장 관리, 그리고 생산을 위한 파트타이머를 다수 뽑아야 했는데 방학 시즌과 맞물려 다양한 사연을 지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A는 전화 면접 때부터 동굴 목소리가 인상적인 친구였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자신감에 가장 많은 손님이 예상되던 잠실점 매장 관리라는 중책을 맡겼다.


첫날 첫 만남에도 낯가리는 기색 없는 그가 왠지 든든했는데, 판매를 준비하는 동안 특이하게 혼잣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냥 일하기 심심한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명대사가 내 귀에 꽂혔다.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폭풍 같던 첫날 매진 후 나는 하루 종일 궁금했던 걸 물었다.


"뭐 대사 연습 같은 거 해요? 아까 우연히 들은 것 같아서."


A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배우 지망생이라 그냥 습관적으로 여러 대사들 연습해 보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배우 생활을 했던 나였기에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아까 그 여성분이 계산 잘못되었다고 A님한테 엄청 뭐라 그랬잖아요? A님이 잘못한 건 맞는데 그렇게 쩔쩔매면서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정신없기도 했고 사람인데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 거 하나하나 너무 마음을 쓰면 오래 일 못 해요."


나의 걱정스러운 말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그거 진상 손님에게 당하는 불쌍한 사장을 연기해 본 겁니다."


보통이 아닌 친구였다. 그는 그렇게 그 바쁘던 잠실점을 완벽에 가깝게 마무리하고 홀연히 떠났다.


바리스타로 채용한 B는 예의 바른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채용을 했는데 실제 만나보니 굉장히 얼어 있어서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너무 성실했고 손님들이 늘 음료를 다 마시고 갈 정도로 제조 솜씨도 뛰어났다. 다만 실수에 대해 강박에 가까운 두려움이 있었다. 뭐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큰일이 난 것처럼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어느 날 주방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서 뛰어 들어갔더니 설거지를 하다 손이 미끄러웠는지 컵 두 개가 떨어져 깨져 있었다.


혹시 다쳤나 싶어 표정이 좀 굳었는데 내가 화가 난 줄 알았는지 B는 눈에 띄게 손을 떨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 월급에서 차감해 주세요."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맨손으로 유리 조각을 주우려는 그녀를 급히 제지하며 말했다.


"그깟 컵이야 다이소 가면 몇천 원이면 사는 건데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럴 때마다 죽고 싶다는 표정 하지 마요. 괜찮아요. 괜찮아."


이후 여유가 있을 때 B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릴 때도 지금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던 그녀는 본인에게 실수는 사치라고 말했다.


카페가 문을 닫음에 따라 B와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B가 강박이라는 무거운 옷을 훌훌 벗고 실수에도 웃을 수 있는 조금은 헐렁한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했다.


C는 처음부터 나를 당황하게 했다.


"혹시 제대로 들으신 거 맞으세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근무가 가능하시다고요...?"


백화점보다 운영 시간이 긴 쇼핑몰은 보통 오픈과 마감 파트를 나누어서 채용을 하곤 했다. 그런데 C는 본인이 먼저 풀타임 근무를 제안했다.


"네. 하루 종일 바쁠 것도 아니고 그냥 서 있는 건데요. 집이 근처이기도 하고. 저 딱히 식사나 휴게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사실 썩 미덥지 않았다. 긴 근무 시간 동안 근무 태도도 걱정되고 분명히 어느 날에는 지쳐서 펑크도 낼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에 다른 대안이 없어서 일단 C를 채용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쇼핑몰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매장에서 일하시는 직원분이요."


올 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매니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분 많이 앉아 있지도 않고 식사하러 자리를 비우는 것도 아니고 딱히 화장실도 한 번 안 가는 것 같은데. 또 손님 응대는 싹싹하게 잘해요, 폐점 시간까지. 되게 특이한 분 같아요."


의외의 말에 재고 보충이라는 핑계로 매장에 종종 들르기도 하면서 C의 상황을 지켜봤는데 내가 봐도 딱히 어떤 문제가 없어 보였다.


"종일 이렇게 서 있는 거예요? 손님 없으면 앉아 있어도 괜찮아요. 식사는 안 하세요?"


"한 번씩 앉아 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식사는 그냥 샌드위치 싸 와서 여기서 바로 간단히 먹거든요. 아, 그것도 휴게 시간이면 급여에서 빼주십쇼 헤헤."


매장 철수 후 휴게 시간 없이 모든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쳐서 급여를 계산하니 꽤 큰돈이었다. 급여를 이체하고 전화를 했다.


"급여 이체했습니다. 이상 있으면 말씀 주시고.. 왜 그렇게 고생하며 일하신 거예요?"


나도 모르게 궁금했던 질문이 튀어나왔고 바로 후회를 했다. 가장일 수도 있고 아픈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고 동생 학비가 필요했을 수도 있는데.


C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명품 지갑이 사고 싶었어요. 덕분에 지릅니다. 감사해요!"


너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해서 부럽네요 따위의 말 같잖은 소리를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망을 거세당하는 시대. 또 그렇게 살고 있는 나. 당장 내 손에 잡히는 확실한 행복을 위해 땀 흘릴 줄 아는 그 당당함이 부러웠다.


사업을 시작하고 많은 친구들이 우리 회사를 거쳐 가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수많은 청춘들이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 같기도 하다. 이 작은 곳에서 떠나 진짜 세상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본인들이 지닌 그 색깔을 잃지 않길 바라기도 하면서, 이곳 역시 언젠가는 오래 머물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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