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치료는 역시 금융 치료

by 지크

생각지도 못한 인력 난관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동료를 호출했다.


"파트타임이긴 해도, 지금 손발 맞춰놓은 분들이 나가버리면 진짜 손해인데... 당장 내일 생산은 어쩌지?"


"그러게 말이야. 분위기도 엉망이고. 하필이면 내일이 올해 마지막 날인데 최악이네"


동료의 '올해 마지막 날'이라는 말에, 꺼져가던 전구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잠깐, 내일 1월 1일이라 백화점 휴무지?"


"응, 그렇지. 왜?"


지출은 좀 있겠지만, 꽉 막힌 혈을 뚫을 묘수가 떠올랐다.


"어차피 내일 생산분은 바로 나갈 게 아니라 비축 물량이잖아. 목표치를 확 낮추고, 그거 달성하면 시간 상관없이 바로 퇴근시키면 어때? 페이는 풀타임, 아니 야간 수당까지 쳐서 주고"


"엥? 그런 짓을 왜 해? 돈 아깝게"


동료의 의아한 눈빛에도 나는 확신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 약속대로 모두 출근은 했지만, 공장 안은 여전히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4050 그룹과 1020 그룹은 서로를 투명 인간 취급했고, 기계 돌아가는 소음 외에는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헛된 구호가 아니었다. 당장의 확실한 '보상'과 '해방'이었다.


"오늘 제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날 선 눈빛들이었다.


"오늘 목표량은 딱 2,000개입니다. 그리고 2,000개가 채워지는 순간, 시간 상관없이 즉시 퇴근하겠습니다"


좌중이 술렁였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급여는 오늘 밤 10시까지 근무한 걸로 쳐서, 야간 수당까지 포함해 지급합니다. 빨리 끝낼수록 여러분 시급은 올라가는 겁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1020 그룹의 한 명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사장님, 그거 진짜죠? 2시에 끝나도 야간 페이 다 주시고, 진짜 뭐라 안 하기예요?"


4050 그룹의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암산은 이미 끝났다.


"물론입니다. 대신, 2,000개가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오늘 밤새우는 겁니다?"


그 순간, 공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것은 화합의 공기가 아니었다. 욕망의 공기였다. 서로를 향한 미움보다 '조기 퇴근'과 '금융 치료'를 향한 열망이 압도적으로 컸다.


"반죽 빨리 넘겨주세요! 예쁘게 말고 그냥 빨리요!"


속재료를 담당한 1020 그룹이 소리쳤다. 원래 분위기 같으면 "어디서 어린 것들이?"라며 쏘아붙였을 4050 그룹이 군말 없이 반죽을 던지듯 넘겼다. 자존심을 세우며 모양을 따질 시간이 없었다. 돈이 날아가니까.


"포장 미리 세팅해! 내가 코팅해서 바로 줄테니까!"


원래 분위기라면 "반말하지 마세요"라고 정색했을 1020 그룹이 "네네!" 하며 포장 집기들을 기계처럼 세팅했다.


미움은 사치였다. 싸우느라 감정을 소모하면 내 돈과 내 퇴근 시간이 날아간다. 그들은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움직였다.


"마시멜로 상온에 둬!"


"초코 파우더 리필!"


공장 안은 흡사 F1 피트 스톱을 방불케 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누구도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점심시간마저 반납했다. 밥 먹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들어서 1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겠다는 집념이였다.


오후 1시 58분. 2,000번째 두쫀쿠가 들어간 박스에 테이프가 붙는 순간, 공장의 모든 소음이 뚝 끊겼다. 거친 숨소리만 가득하던 공간에, 누군가 작게 외쳤다.


"끝... 끝났다!"


와아아! 하는 함성은 없었다. 땀에 젖은 꼴들은 엉망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해냈다. 아니, 정확히는 '돈'을 벌어냈다.


"사장님, 약속 지키세요. 오늘 근무표 10시까지인 겁니다?"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당황한 척을 했고, 그제야 공장 안에 웃음소리가 터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뒷정리까지 서로 도와가며 완벽하게 끝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지만, 가장 깔끔한 화해였다.


긴장이 풀리자 배꼽시계가 울렸다.


"이제 배가 좀 고프네요."


4050 그룹의 한명이 배를 문질렀다.


"사장님, 저희 뭐 먹으면 안 되나요?"


1020 그룹의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바라던 바였다.


"내일이 새해니까, 제가 쏩니다. 근처 가서 떡국이나 한 그릇씩 하고 갈까요?"


그렇게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일적으로만 부딪치던 사람들이 숟가락을 들고 마주 앉으니, 그제야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자 얼어붙었던 마음도 녹아내렸다. 냉랭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서로 이름이며, 사는 곳이며, 사소한 호구조사를 하며 꺄르르 웃음꽃이 피었다. 그만두겠다던 살벌한 이야기는 만둣국 국물과 함께 쏙 들어갔다.


그날 수십만 원의 추가 지출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안도했다. 그 돈은 공장의 평화를 산 값치고는 꽤 저렴했다.


직원들을 모두 보내고, 홀로 공장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대행사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 입점 정식 요청]


본점? 그것도 명동 한복판에 있는 거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본점에서의 성공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가 동네 맛집 수준으로 쌓아온 레퍼런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나는 텅 빈 공장을 둘러보았다. 오늘 우리가 보여준 그 미친 속도와 팀워크라면, 불가능은 없을 것 같았다.


자, 이제 백화점의 심장, 명동도 점령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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