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유통의 상징과도 같은 백화점 명동 본점에서 입점 제의가 왔을 때의 전율은 아직 잊을 수 없다.
동료들과도 화기애애하게 희망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설렘은 곧장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히 말하는 것 같지만서도.. 사실 그 자리가 직전에 다른 두쫀쿠가 있다가 나간 자리에요. 어떻게 보면 늦게 들어가는 걸 수도 있고..그리고 그 브랜드 장사가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다네요"
난감한 듯한 대행사 대표의 말에 지금까지 꽃 피웠던 장미빛 미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좋아보일때는 한없이 좋아보이던 일이 걱정스러운 점 하나가 생기자 우려가 쏟아졌다.
"너 명동 언제 놀러가봤어? 난 1년은 넘은거 같은데"
"명동...은 잘 안가지..? 관광객만 많고 복잡해서.."
"주말이 대목인데 두쫀쿠 아는 한국인들은 싹 빠지고 잘 모르는 외국인들만 가득하면 이거 팔릴까?"
한국에서 유행하는 디저트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030 한국 소비자와 달리, 외국인들에게는 이 낯선 디저트가 그저 생소한 먹거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본점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매장 설치 규정부터 위생, 동선 하나하나까지 검수 기준은 깐깐했고, 오픈 준비 과정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분증 없으세요?"
"아 네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오늘만 좀 들어가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신분증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안전 관리자시죠? 그러면 다른 분들도 못들어가니까 기다리시고요"
"박스에 생산 날짜 다 도장 찍어 오세요"
"촌스럽게 매대에 시트지 붙이지 말고 가드 드릴테니까 다 끼워서 매대 둘러주세요"
"보건증 없는 파트타임 직원 절대 쓰면 안됩니다"
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지만 바쁜 일정에 조금씩 눈감아줬던 일들이 본점에는 통하지 않았다. 다른 지점보다 몇배는 힘든 느낌이었다.
이 와중에 담당 매니저님조차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넸다.
"따로 마케팅 하는 것 없죠? 첫 2~3일 정도는 큰 기대 하지 말고 홍보하는 기간으로 생각합시다.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이니까요"
불안감을 안고 시작한 오픈 첫날. 백화점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려했던 외국인 손님들은 물론이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한국 손님들까지 뒤섞여 매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기서 우리 두쫀쿠 파는걸 어떻게 안거야 도대체?"
"백화점 측 홍보가 있긴 했는데 이게 이렇게 몰릴 일인가..?"
홍보 기간이라던 매니저의 예상이 무색하게 준비한 물량은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전량 매진되었다.
담당 매니저는 오늘 준비한 수량이 너무 적었다며 성화였다.
행복한 비명은 곧장 물량 공급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본점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말에 다른 지점보다 최대한 많은 물량을 이곳에 우선 배정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매일 똑같았다. 점심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완판. 텅 빈 진열대를 보며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 측에서 다급하고 은밀한 연락이 왔다.
"확실한건 아닌데.. 저희 그룹 회장님이 내일 매장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준비 철저히 해주세요"
"네?? 도대체 왜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평소 같으면 매진 임박이나 완판은 자랑스러운 훈장이겠지만, 그룹의 총수가 방문하는데 텅 빈 매대를 보여주는 것은 결례이자 브랜드 관리 실패로 비칠 수 있었다. 백화점 담당자들도, 우리도 비상이 걸렸다.
우리는 즉시 긴급 회의를 열고 당일만 브레이크 타임을 갖기로 했다. 오전에 물건을 다 팔아버리지 않고, 일부러 판매를 중단한 뒤 오후 물량을 남겨두는 고육지책이었다.
판매를 더 할 수 있음에도 회장님이 올 때까지 두쫀쿠를 사수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매장 앞에는 죄송합니다, 잠시 후 다시 판매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고, 매니저와 우리는 괜히 서성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결과적으로 그날 회장님이 실제로 우리 매장 앞을 지나갔는지, 아니면 멀리서 지켜보고 갔는지는 전달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의 소동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훈장으로 남았다. 죽은 자리라 평가받던 곳에서 회장님의 방문을 대비해 물건을 숨겨야 할 정도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명동 본점에서의 치열했던 나날들은 충분히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어쩌면 회장님도 그날 인파 속에 섞여,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길 기다리며 웨이팅을 한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