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면접에서 나온 그 질문 " 어디 사세요?"
회사에 대한 분석이나 나를 위한 선택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사치였던 취준생 시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홈쇼핑 최종면접 대기장에 앉아있었다.
최종면접이라니. 여기서 잘하면 드디어 취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떨어진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왠지 아랫배가 저릿해져 왔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기 위해 경쟁자들을 앞세우고 맨 마지막으로 최종면접장소로 들어갔다(근데 내가 제일 안쪽 자리여서 황급히 이동했다)
이미 1차 면접과 필드 면접 그리고 발표 면접까지 진행된 터라 나름 준비했던 밑천은 바닥났고 제발 어려운 질문만 하지 마라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헝클어진 머리와 벗어버린 안경, 의자 깊숙이 누운 자세의 면접관들. 하필이면 하루 종일 진행된 면접의 마지막 조여서 그런지 면접관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지쳐 보였다.
지원자는 총 8명 그리고 면접은 20분 동안 진행될 것이라고 사전 공지를 받았다. 단순 계산으로 한 명당 3분의 발언 기회도 없는 것이었다. 한 사람씩 이름이 불리고 질문이 시작되었다. 내가 받지 않아서 다행인 질문도 있었고 저 질문은 내가 받았으면 기가 막히게 대답했을 텐데 하는 것도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한 면접관 입에서 나왔다.
"본인이 PD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홈쇼핑 PD 최종면접에서 충분히 나올법한 질문이었는데 불운하게도 나는 그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과 최종면접이라는 압박감의 콜라보는 내가 어릴 적부터 TV를 많이 봐서, 교내 방송국에서 즐거움을 느껴서 따위의 전혀 매력 없는 답변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미팅에서 정말 재미없는 농담을 친구가 쏟아낼 때처럼 면접관들의 고개가 빠르게 숙여졌다. 무언가 망한 듯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어느덧 15분이 지나고 다른 지원자들이 많게는 3개의 질문을 받는 동안 내게는 그 답변 이후 입을 뗄 기회가 오지 않았다. 지원자들이자 경쟁자인 사람들의 답변은 경쾌했고 확신에 찼으며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나만 초대받지 못한 사람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가는 분위기가 명백하던 그때, 한 면접관이 내가 너무 소외되어 보였는지 질문을 툭 던졌다.
"지크 님은 어디 사세요?"
최종 면접에서 어디 사냐니. 차라리 질문을 하지 말지. 누가 봐도 구색 맞추기용 지나가는 질문 같았다. 뭔가 서글프면서도 치욕스러운 기분에 그냥 대답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장식용 밑반찬이 될 수는 없었다. 분해서라도 어떻게 하면 한방 먹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오늘 아침에 배달된 택배가 퍼뜩 생각이 났다. 뭔가 스토리가 될 것 같았다.
"저는 신촌에 삽니다. 신촌 중에서도 연희동에 사는데 이 회사의 배송 우선순위 지역인 것 같습니다. 여기 방송을 보고 주문을 하면 매번 000 기사님이 아침에 택배를 전달해주십니다. 저는 기사님들 가는 모습을 종종 지켜보는 편인데 배송 트럭에 회사 로고가 크게 박혀있으면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답변을 배경 삼아 면접을 끝내려고 이력서와 본인 소지품을 정리하고 있던 면접관들이 일순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냥 어디 삽니다 하고 끝낼 줄 알았나 보다. 준비한 답변은 아니었는데 순식간에 답변을 쏟아낸 나를 보고 질문을 했던 면접관이 한참을 있다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아 네 답변 잘 들었습니다. 제안 주신 건 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고 나는 그날 밤 나를 자책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내가 걷어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질문조차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절실히 답변한 내 모습이 독특했을까? 나는 해당 공채의 유일한 PD로 합격했고 아직도 다니고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 피곤한 모습의 면접관의 어디 사냐는 그 질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그분에게 꼭 그 질문의 의도를 물어보고 싶다.
정말 지나가는 질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에게 준 기가 막힌 찬스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