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서 졸지에 암행어사가 되었다

by 지크

홈쇼핑 채널에서 많이 판매하고 있고 인기 있는 상품 중 하나가 여행 상품입니다.


50세~60세 시청이 가장 많은 홈쇼핑 채널의 특성에 맞게 조금 과장하면 돈과 몸만 가져가면 될 정도로 디테일하게 만든 패키지여행상품들이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의 지갑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홈쇼핑 PD이자 여행을 좋아하던 저조차도 여행 방송을 진행할 때 멋진 풍경의 영상들을 보며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행 방송은 홈쇼핑 입장에서 나름 큰 리스크입니다.

바로 여행 상품을 가지고 온 여행사도, 상품과 조건을 기획한 MD도, 방송을 하는 PD도 실제 같이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우리가 방송에서 약속한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MD는 여행사로부터 몇 번이고 확인을 받고 철저히 이행해주기를 부탁하지만 여행사 역시 현지 여행사에게 소위 말해 하청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100% 확인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나 패키지여행은 일부 안 좋은 사례들이 종종 공론화되어 고객들의 눈높이도 매우 높습니다. 사실 그런 처지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홈쇼핑이라 만약 홈쇼핑에서 패키지여행상품을 구매해서 갔는데 뭔가 제대로 진행이 안되었다? 고객들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라고 생각하며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행 MD들이 유독 민감하게 여행사들에게 단속을 철저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몇 년간 여행 상품 방송을 전담하며 여행상품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금요일 밤과 주말 밤 방송을 혼자 쳐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여행 MD 중 한 명이 저에게 여름휴가를 본인이 관리하는 패키지여행으로 가는 것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여행사에 잘 이야기해서 할인은 물론이고 현지에서도 이것저것 좀 챙겨줄 수 있게 전달해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제가 판매하는 패키지여행상품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MD에게 할인은 감사히 받겠으나 홈쇼핑 직원이 가는 건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주 방송하던 튀르키예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패키지여행을 간 터라 코스 고민 없고 가이드분이 설명을 해줘서 미리 공부할 필요도 없는 등 좋은 점을 많이 느끼고 이래서 말이 많아도 패키지여행들을 많이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상품 기술서를 가지고 다니며 동선을 체크했고 약속했던 것들이 잘 지켜지는지 점검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MD에게 연락을 해서 이런 점을 좋았고 이런 점이 개선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었습니다.


여행 중반이 지나자 조금씩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지식으로 제공된다던 일반 식사들이 온통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운영하는, 파리가 많이 날리는 저급 뷔페로 채워지고 여행 코스에 없던 이상하고 허접한 패션쇼를 관람하게 하더니 자연스레 의류 구입 타임이 추가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스탄불 명소들을 방문한다고 공지되었지만 관광객들도 별로 없는, 입장료 들지 않는 공원과 사원들 방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야간에 무리하게 선택관광을 진행하다가 가이드와 관광객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식사 후식으로는 검은곰팡이가 핀 귤들이 나왔습니다.


출국 비행기를 기다리며 가이드분에게 열흘간 고생하셨고 사실 홈쇼핑에서 이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PD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이드분은 크게 놀라며 본인이 먼저 이것저것 부족한 점이 많아서 죄송하다며 하지만 현지에서 진행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점들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국내 여행사에서 보내주는 금액으로 진행을 하면 본인 인건비도 안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귀국 후 MD에게 덕분에 잘 다녀왔다며 술을 한병 건네면서 여행 기간 중 있었던 변수들과 그로 인해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 고객들의 불편사항 등을 모두 전달했습니다. MD는 그날 꽤 긴 시간 여행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튀르키예 여행 상품은 다음 해부터 사라졌습니다.


제 사례 이후 여행 담당 MD나 PD들이 본인들의 여름휴가를 활용하거나 출장 등으로 본인들이 관리하고 있는 패키지여행상품에 몰래 참여하는 경우들이 생겼습니다. 저 역시 제가 론칭한 베트남 패키지여행상품에 지인들을 몰래 넣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체크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모든 것이 칼같이 지켜지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도 변수가 많고 많은 관광객들이 현지 가이드의 눈에 보이는 상업적 활동도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지 파악이 잘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하여 홈쇼핑사와 여행사를 믿고 낯선 타지로 온 여행객들에게 지나친 불편을 야기하거나 약속한 것들을 뒤집는 수준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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