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민 산문집
제주 동쪽 마을에서 펼쳐지는 상실, 은둔
그리고 삶을 구하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을 상실한 우아민은 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제주 동쪽 마을에서 은둔하는 동안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고, 점심에 파티에 가고, 저녁에 차를 마신다. 풀꽃을 꺾다 바다로 걸어 들어가고, 머리 서기 하다 돌을 모으기도 한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도 자신을 살아가게 만든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은 <가장 긴 밤> 발행인이자 무니 출판사를 운영하는 우아민의 첫 산문집이다. 장(chapter)으로 나누지 않은 스무 편의 글에는 삶을 뒤흔드는 사랑과 삶을 멈춰 세우는 상실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랑을 투명하게 그려내는 문장들이 담겨있다. 니체, 왕가위, 모네, 보이차, 김오키, 요가를 즐기고 숲과 오름, 해변을 산책하는 날들. 그와 함께 슬픔에 대해 생각한 날들은 결국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넣는 희망으로, 무의미한 삶이라도 살아달라는 기도로 우리를 이끈다.
“아마도 우린 들이치는 슬픔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삶의 곡선으로 매만지려는 시도 속에서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라는 프롤로그에서 “아무도 없는 사원에 여러 번 달이 뜨고, 음악은 계속되었다.”라는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면 우리는 슬픔을 말하려다가 사랑이나 아름다움만 실컷 나누느라 새로운 생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데이지 꽃밭으로 채워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이 드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든 위로의 말이 제게서 썩어 버린 것은 슬픔을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기 때문일까요. 슬픔으로 가득 찬 말 속에는 저 하나밖에 없어서 저는 저를 잃었습니다.
ㅡ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이에요 중
사실 숨을 마시고 내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고통을 하나의 점처럼 응시하면서 호흡에 기울였을 때 통증은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우리는 각자의 매트 위에서 호흡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ㅡ 우짜이, 우짜이 중
사랑은 언제나 성숙과 미숙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익숙해질 수 없는 처음과 완전해질 수 없는 감정이 뒤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ㅡ 여름의 복숭아를 좋아하세요… 중
오래된 장면이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들판으로 달려가다 돌아서 두 팔을 펼치는 모습, 제 코에 풀을 갖다 대고 귀 옆에 꽂는 모습, 그러다 웃음소리를 내며 가늘어진 눈가로 주름이 깊어지는 모습… 아름다운 풍경에는 여전히 당신이 달라붙어 있었지만, 나는 어떤 음악을 한 곡 끝낸 것도 같다.
ㅡ 똑같은 재즈 연주는 없다 단 한 번뿐 중
그렇게 사랑에 매달려 왔다. 그 매달림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나를 지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 기다려진다는 말, 보고 싶었다는 말… 이런 말들이 모인 안전한 세계가 있어 그곳에 나의 불안까지 의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ㅡ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불안해서 중
잔잔해지고 싶을 때 다시 펴 보겠습니다.
시가 잘 뭉쳐지지 않을 때 한번 더 읽겠습니다.
마알간 책 하나 쓰기 위해 여행짐을 쌀 때 꼭 챙기겠습니다.
ㅡ 이병률 시인
이 책은 삶에 끼어든 슬픔에 돌아서지 않고, 묵묵히 가로질러 가려는 한 사람의 소요한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저벅저벅, 축축하고 무겁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어떤 결심이 필요했던 누군가가 지난 자리를 다시 걷는 기분으로.
슬픔을 외투처럼 껴입고 싶은 날에, 그리하여 슬픔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날에 우아민의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ㅡ 서윤후 시인
서울에서 태어났다.
<가장 긴 밤>을 발행하고 무니 출판사를 운영한다.
차를 내리고, 머리로 서고, 시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