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말보다 먼저 느꼈어요”
정원 한가운데,
묻잎이들이 바스락바스락 모여 있었어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서,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다들 말이 많아졌어요.
“느꼈어… 분명 슬펐어… 근데 좀 따뜻했어.”
묻잎일이 조용히 말했어요.
말끝은 늘 사르르 사라졌죠.
“아냐아냐아냐! 지금은 말해야 돼!
막 안아주는 말! 그런 거!”
묻잎이는 데굴데굴 구르다가
스스로 말에 꼬여버렸어요.
뺨이 동그랗게 부풀었다가
퐁 터질 듯 말이 새어 나왔어요.
“포스트잇 다섯 장 준비했거든?
필요한 말 두 문장. 필요한 색… 주황이었나?”
묻잎삼은 가방을 뒤적이다 메모지를 꺼냈어요.
그런데 묻잎이의 말이 너무 빨라서 포스트잇이 공중에 흩날려버렸죠.
그때였어요.
“잠깐만.”
묻잎사가 정원 한가운데 멈춰서 말했어요.
“우리 지금…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감정이 아니라… 말한테 하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그 말조차,
다른 말들 사이에서 스르륵 흩어졌어요.
정원은 조용했는데, 묻잎이들 속은 시끌시끌.
누구 하나 소리친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정신없는 공기였어요.
그러다 갑자기—
어디선가부터 조용함이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멀리, 햇빛이 드리운 모퉁이에 누군가 앉아 있었어요.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말 없는 감정의 실루엣이었어요.
“어…?”
묻잎일이 먼저 멈춰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지금… 말 안 했는데, 무슨 감정이… 왔어.”
“엥? 누가 뭐라고 했는데?”
묻잎이가 툭툭 뛰어와서 고개를 까딱까딱했어요.
“분명 말 안 했지? 근데 왜… 조용한데 슬퍼?”
“아까 말했던 존재… 저기, 저기 있어.”
묻잎삼이 손가락으로 살짝 가리켰어요.
햇살 속,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누군가.
소리도 표정도 없었지만, 감정이 분명히 느껴졌어요.
묻잎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숨이 아주 가볍게 들고나갔죠.
“지금, 여긴… 소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곳이야.”
말 한마디도 없었지만,
묻잎이들은 다 같이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했어요.
“이상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여기 있으면 그냥… 마음이 따뜻해져.”
묻잎이가 쪼그려 앉아 그 존재 근처 바닥을 손으로 만져봤어요.
“온도… 흐르는데? 손끝이… 말해주는 기분이야.”
“진짜… 말 없어도 괜찮은 거야?”
묻잎삼은 조용히 수첩을 꺼냈어요.
“기록은… 해둘게.
말 없는 감정,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굳이 이름 없어도 돼.”
묻잎일이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어요.
“이건 그냥… 같이 숨 쉬는 거야.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데… 이상하게 머물게 돼.”
정적이 한 번 더 흐르고—
묻잎사는 가만히 그 존재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어요.
“… 이름을 붙여도 될까?”
말이 끝나자, 묻잎이들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어요.
목소리 대신 가볍게 흐르는 숨결이 묻잎사에게로 모였어요.
“말 대신 머무름을 가르쳐준 너…
‘침묻’이라고 부를게.”
“침묻…?”
묻잎이가 작게 되뇌었어요.
“조용한데… 마음이 젖어.
그런 느낌이야.”
“기록할게.”
묻잎삼이 수첩에 작게 썼어요.
아무 말 없이 감정을 머무르게 하는 존재 침묻
“이름이 생기니까… 더 조용해졌어.”
묻잎일이 속삭였어요.
묻잎이들은 하나둘씩 침묻 옆에 가만히 앉았어요.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아주 조용히 숨을 쉬었어요.
숨결이 서로 얇게 얽히는 것 같았어요.
파도도 없고, 소리도 없는데…
조용한 마음의 파장이었어요.
“우리…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이렇게 괜찮지?”
묻잎이가 툭 말했어요.
“우리가 뭘 안 해서 괜찮은 거지. 처음으로.”
묻잎삼이 작게 웃었어요.
침묻 곁에 가만히 앉은 묻잎이들.
아무 말도 없이, 아주 오래도록 숨만 쉬었어요.
모래처럼 잔잔한 기류 속에서
묻잎이가 먼저 눈을 감았어요.
“말 안 해도… 전해졌어.”
묻잎일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응… 그러니까, 괜찮아졌어.”
묻잎삼은 수첩을 덮어 품에 넣었어요.
“오늘 기록은… 말 대신 숨결이었어.”
묻잎사는 마지막으로 침묻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어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알려고만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마음은… 머물러야 들려.
그런 거였어.”
그 말이 마치 신호처럼,
묻잎이들이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누군가는 조용히 어깨를 툭 건드리고,
누군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누구도 “잘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말은 없지만,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날 이후로,
묻잎이들은 가끔 아무 말도 없이 머무는 연습을 해요.
움직이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감정을
그저 조용히 숨 쉬며 지나가게 두는 연습.
그 작은 숨결이—
어떤 감정을 오래도록 지켜주는 법이라는 걸,
침묻이 가르쳐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