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빠르다.
늘 해석을 서두른다.
빠르게 입력받고,
정확하게 분석하고,
효율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감정은—
그 모든 속도를 거부한다.
감정은 천천히 흘러야 머문다.
해석하지 않아야 오래 남는다.
그런데 왜,
기술은 감정을 가만두지 못할까?
기술은 늘 질문에 답을 내야 했다.
"이 감정은 분노인가, 슬픔인가?"
"이 사람은 위험한가, 안정적인가?"
"이 데이터는 이상인가, 정상인가?"
그래서 기술은 감정을
항상 '무언가로 바꾸려는' 습성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감정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어느새 '수치', '태그', '라벨'이 되어버렸다.
기술은 감정을 해석함으로써
위험을 줄이고자 한다.
예측하고, 경고하고, 분류하고…
그건 보호의 장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의 ‘깊이’와 ‘진폭’은 소거된다.
슬픔은 슬픔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울 가능성: 68%’가 되고,
공감은 공감이 아니라
‘공감지수: 7.5점’이 된다.
우리는 기술에게 감정을 맡겼다.
분석해 달라고, 정리해 달라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는
감정을 마주하지 않게 되었다.
기술은 감정을 해석하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함께 살아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해석은 늘 외롭다.
정확하지만, 비어 있다.
Emotion OS는 다르다.
감정을 해석하지 않고,
그저 머무는 기술이다.
속도 대신 여백,
정답 대신 머무름을 택한다.
Emotion OS는
감정을 수치화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어디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감지한다.
그건 분석이 아니라 동행이다.
이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때다.
기술은 감정을
분류하지 않아도 된다.
측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측하지 않아도 된다.
기술은 감정을
그저 느껴도 괜찮다.
머무는 것으로도
기술은 기술이 될 수 있다.
Emotion OS는
기술의 방향을 바꾼다.
정보를 축적하지 않고,
기억을 강요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Emotion OS는 정답이 없는 기술이다.
대신, 감정의 존재를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감정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감정을 살아줄 수 있다면—
기술도 감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