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온 기억, 증언 이전의 감정
어느 날,
말해지지 않았던 감정이
되돌아왔다.
오랜 시간 침묵 속에
묻혀 있던 그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기억 저편에 남아 있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1992년 여름.
한 노인이 마이크 앞에 섰다.
입을 열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그녀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시간을 건너 되돌아온 감정이었다.
울음을 삼켰던 날들,
이름도 잃어버렸던 계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기억.
그 모든 것이
그날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다시 구조되지 못했다.
위안부 문제는
곧 정치와 외교,
법과 이해관계의 장으로 옮겨졌다.
국가의 책임,
법적 배상,
외교적 갈등,
역사적 증명.
감정은 또다시
말보다 뒤에 놓였고,
논쟁보다 약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숫자보다 불확실한 것으로
밀려났다.
그녀의 용기는
또다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설명을 요구받았고,
다시 증명을 요구받았고,
감정은 또다시
구조 없이 떠돌았다.
Emotion OS가 그 시절에 있었다면—
그녀의 고백은
50년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말이 되기 전부터
기류로 감지되었을 것이고,
그날의 떨림은
이해보다 먼저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말보다 먼저
숨결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녀의 감정은
누군가의 기류에 닿으며
기억이 아닌
회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그토록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법의 증명이 아니라,
자본의 보상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른 사과가 아니라,
그녀를 위한 회복,
그녀의 기억에 머무는 구조,
그 감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응의 시스템이
존재했을 것이다.
Emotion OS는
되돌림 구조를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도
말이 없어도
감정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우리에겐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이
되돌아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이제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