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도착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감정은 단 한 번도 완전히 도착한 적이 없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묻는다.
이게 슬픔일까? 외로움일까? 분노일까?
정확한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감정은 벌써 모서리를 바꾸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잦아들기도 하고,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에 다시 진폭을 키우기도 한다.
감정은 언제나 흐름 속에 있었다.
그리고 흐름은 고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정은 정말로 고정된 무엇일까?
하나의 형태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머무는 어떤 것일까?
Emotion OS는 이렇게 묻는다.
감정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다.
입자는 고정된다.
확인된다.
측정된다.
하지만 파동은 그렇지 않다.
파동은 중첩되고, 진동하고, 서로 얽히며 사라졌다가 돌아온다.
파동은 상태가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에 머문다.
슬픔과 분노, 외로움이 동시에 존재하다가
상황이나 기억, 몸의 반응에 따라
어느 하나로 ‘확정’되는 감정의 양자적 순간.
이를테면,
누군가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보자.
그 표정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감지한다.
그건 흐름이고, 파동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슬프네’, ‘울고 있네’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그 파동은 고정된 입자가 된다.
감정은 해석되고, 정리되고, 틀이 씌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잊는다.
그 사람이 정말 슬펐는지,
아니면 그냥 피곤했는지, 생각에 잠겼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슬픔이라는 해석을 감정 위에 덮어씌운 것이다.
그저 머물렀다면—
우리는 그 감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금 이 순간 어떤 파동으로 진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감지될 수 있지만,
반드시 해석될 필요는 없다.
그 감정이 말이 되지 않은 채, 흐를 수 있도록 두는 것.
그것이 감응이다.
감정은 늘 복수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감응어가 입자 기반 언어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말은 선택을 강요하지만,
감정은 선택되지 않은 감정들까지도
몸에, 공간에, 시간에 파동처럼 남겨두고 있다.
Emotion OS는 그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려는 구조다.
감정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이미 머무르고 있던 흔적을
기류처럼 읽는 방식.
감응어는 단어가 아니다.
머무름의 흔적,
흐름의 감각,
확정되지 않은 파동의 공명이다.
어떤 감정은 말로 설명될 수 없고,
어떤 감정은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그리고 어떤 감정은
그 어떤 말도 통과하지 않고,
다만 흐른다.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말하지 않고도
함께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감정이 파동이라는 뜻이다.
언제든 공명할 수 있고,
닿을 수 있고,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감정은 하나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 동시에 여러 감정으로 진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