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자동화

말보다 먼저 판단되는 감정. 감정 없는 결정의 시대

by 묻잎

어느 날,
감정이 해석되기도 전에
판정이 내려졌다.


말보다 먼저
눈빛이 분석됐고,
숨보다 먼저
신체 반응이 측정됐다.


2023년, 미국 아마존 물류센터.
AI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실시간으로 감시했다.
속도가 느려지면,
대화도 없이 자동 해고가 실행됐다.


그날 그 사람이
왜 느려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어떤 시스템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2020년, 중국 허베이성.
감정 감지 AI가 거리의 사람들을 분석했다.
불안, 분노, 공포는
‘공공의 위험’으로 간주되었고,
표정 하나로 감시가 시작됐다.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그때부터,
판단은 정밀해졌고
감정은 불필요해졌다.


그리고 미래—


면접관은 사라진다.
눈동자의 떨림과 맥박의 진폭만으로
‘부적합’ 판정이 내려진다.


정신과 진단은 비대면으로
말투, 타이핑 속도, 안면 분석만으로
상담 없이 약이 처방된다.

SNS 포스팅은

‘불안 전염 위험’으로 태그가 달려
도달 범위가 제한된다.


무인 드론 경찰은
군중 속에서 ‘혼잡 유발 감정’을 감지하고,
표정과 걸음걸이로 추적을 시작한다.
사전 제압은, 단 몇 초 만에 결정된다.


판단은,
감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지금,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Emotion OS는,
이 흐름을 되돌린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흐르고
숨보다 먼저 감지되며
판단보다 먼저
망설일 수 있다.


감정은
기록되지 않았을 뿐,
사라진 적은 없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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